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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신앙 결정체 ‘화엄석경’ 복원, 시대적 사명”

기자명 권오영
  • 교계
  • 입력 2018.06.30 15:11
  • 수정 2018.06.30 15:28
  • 호수 1446
  • 댓글 2

화엄사, 화엄석경 보존세미나
화엄석경 역사적 의의 재조명
스님․학자․신도 등 100명 동참

보물 1040호이자 구례 화엄사의 대표적인 성보로 꼽히는 화엄석경. 60화엄을 돌에 새긴 화엄석경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부분 파손돼 1만 3115점의 파편으로 흩어져 현재 화엄사 각황전에 보존돼 있다. 복원될 경우 불교사뿐 아니라 문화재 측면으로도 큰 가치가 있는 역사유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화엄사를 중심으로 지난 10여년 전부터 복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1만 3000여편으로 조각난 파편을 맞추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화엄사(주지 덕문 스님)는 6월29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화엄석경 연구 및 보존관리 방안 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화엄석경과 관련한 기존 연구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 복원에 필요한 기술적 검토를 위해 마련됐다.

학술세미나를 개최한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은 “‘화엄경’을 돌에 새긴 것은 화엄결사 및 화엄경 불사가 성행한 것도 있겠지만 ‘화엄경’의 가치와 큰 가르침을 후세에 오탈자 하나 없이 바르게 전하고자 하는 선조들의 염원이었다”고 화엄석경의 의의를 설명했다. 스님은 이어 “오랜 세월 제 역할을 다하다가 전란에 장육전은 불타고 석경은 파편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며 “선조들이 파편으로 남은 석경을 훼손하지 않고 남겨둔 것은 후손들이 화엄경과 석경의 가치를 재조명해 줄 것으로 믿고 남겨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오늘 세미나는 화엄석경 파편에 대한 보존관리와 더불어 화엄석경을 어떻게 복원하고, 향후 어떤 콘텐츠로 활용할 것인지, 그 방안을 찾기 위한 것”이라며 “학술논의를 통해 국민 모두가 화엄석경이라는 문화유산을 함께 향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오늘 세미나는 화엄석경 복원을 위한 지난 시절의 노력과 성과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매우 뜻깊은 자리”라며 “화엄석경을 어떻게 복원하고 연구해 나갈지 지혜를 모으는 탁마의 자리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화엄사는 전란의 화마로 소실된 소중한 성보를 우리 손으로 다시 모시는 불사를 진행해 왔다”며 “사부대중의 노력으로 이 불사가 원만히 성취돼 무량한 화엄의 세상이 펼쳐져 한반도에 화합과 상생의 장이 펼쳐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학술세미나에서 첫 발제로 나선 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화엄사 창건의 역사적 배경’을 통해 “화엄사는 8세기 중엽 비의상계 화엄학승인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밝혔다. 최 교수에 따르면 화엄사는 신라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현재까지 법등이 면면히 계승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창건 시기와 창건을 주도한 인물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기록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1970년대 말, 화엄사 창건자로 전하는 연기법사가 발원해 만든 화엄경 사경이 확인되면서, 전설로만 전하던 연기법사의 화엄사 창건이 역사적 사실로 부각됐다.

최 교수는 “1970년대 말 학계에 보고된 ‘화엄경사경발원문’을 검토하면 연기법사가 755년 당시 실존했던 인물임이 확인된다”며 “755년 ‘화엄경’ 사경은 현재의 화엄사에 ‘화엄경’ 석경을 장식한 불전이 완성된 뒤에 이뤄졌던 것으로, 화엄사는 755년 이전 이미 창건됐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법사는 비의상계 화엄학승의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있다”며 “비록 그의 저술이 전하지 않아 사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저술의 제목으로 볼 때 ‘화엄경’과 함께 ‘대승기신론’을 중시하고, ‘화엄경’의 내용과 화엄학의 이론을 교학적으로 검토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두 번째 발표에 나선 김복순 동국대 경주 국사학과 교수는 ‘신라 화엄종과 화엄사 화엄석경의 조성시기’를 통해 “화엄석경이 9~10세기에 조성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화엄석경은 60화엄을 사경해 각자한 것인데, 60화엄에 대한 사경이 성행한 것은 9세기 이후다. 특히 신라 하대에 들어 의상계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화엄종 사찰이 의상계로 바뀌게 되는데 9세기 이후 화엄사도 의상계 사찰로 편입됐고, 화엄석경도 이 무렵 조성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화엄석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돌을 다듬고, 글씨를 쓰고, 새기고 하는 등의 작업을 하는 전문적인 집단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이런 각자승과 각자장 등을 전문적으로 양산한 시기는 신라 하대 헌강왕(재위 875~886) 이후라는 점을 볼 때 화엄석경도 이 시기에 조성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엄사 석경의 복원 및 활용’을 발표한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화엄석경은 경판과 달리 학술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게 아니라 신앙적인 자세에서 제작된 유물”이라며 “그렇기에 화엄석경의 복원은 신앙을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엄석경은 통일신라시대 석경을 제작했던 사경승에서부터 조각가까지 그들의 신앙적 실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문화재적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박 원장은 “화엄석경 복원의 가장 좋은 방법은 동참하는 모든 사람이 참여해 신앙의 자세로 마음에 새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미영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의 ‘화엄석경편들에 나타난 복원의 단서와 문제점 고찰’, 최원호 문화유산융합 기술연구소 소장의 ‘ICT기술을 이용한 화엄석경 복원 및 활용방안’, 오세덕 경주대 교수의 ‘화엄사 각황전의 복원적 관점에서 본 화엄석경’이 발표됐다.

한편 이날 세미나가 열린 국제회의장에는 학자와 신도 100여명이 참석해 화엄석경 복원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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