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가 변복이라니
수행자가 변복이라니
  • 진명 스님
  • 승인 2018.07.02 13:12
  • 호수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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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유형의 길과 무형의 길. 매일 그 길 위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나는 인간의 길 위에 태어났고, 수행자의 길 위를 걷고 있다. 여러 갈래로 난 수많은 길 위에서 다양한 삶을 만났다.

사람으로 태어나 축생의 길을 걷고 있는 삶, 부모가 걸어야 하는 길에서 부모의 길을 포기하는 삶, 법조인의 길을 선택하고도 불법(不法)으로 사는 삶, 수행자의 길을 선택했으면서도 다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삶 등 다양한 삶의 모습들.

언젠가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해외 여행길에 있는 일부 스님들이 사복 차림으로 다니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경우 20여년 전에는 승복으로 학교 다니는 것을 학교 측에서 허락하지 않아 학인스님들이 반사복 차림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던 현지 상황도 있었다. 그런 경우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지 제도가 승려의 복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했음에도 그런 현지 상황을 역이용하는 용감한 학인을 내가 직접 보고 문제를 느낀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는 복장에 제한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복장으로 학교와 여행길에 나서는 모습들을 보면 우선 이해하기에 앞서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라는 것도 밝혀 둔다. 그 일부가 전체를 망치는 경우가 있기에 우리 함께 깊이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이 글을 쓴다.

어떤 이유에 앞서 승가로 출가한 수행자는 승복을 비롯한 위의에 대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승가 공동체로 출가해 은사 스님으로부터 가사장삼과 발우를 전해 받는 것은 법을 잇는 여법한 의식이며, 견성성불 할 때까지는 목숨과도 같이 소중하게 지켜가야 하는 법도가 아니던가. 가사장삼을 수하고 수계를 받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법복에 대한 존중과 신의가 있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종단에 언제부터 반승복 차림을 하거나 변복을 하는 문제가 생겨났을까? 종단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논의를 거쳐 반승복과 변복의 한계와 범위를 조정하거나 규제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안거 해제 후 만행으로 산행을 선택한 수행자가 있다면 안전을 위해 필요한 복장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까지 다 포함된 변복의 범위가 고려되어야 한다.

조계사 근처에서 적삼차림으로 다니는 스님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찰 도량에서 외부 손님들을 맞이할 때도 최소한 동방아 차림으로 예의는 지켜야 할 터인데 조계종의 일번지인 조계사와 총무원 주변에서, 외국에서 온 여행자와 수많은 불자들이 오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적삼만 입고 다니는 일이 벌어지는데도 어떤 계도나 규제도 없다. 물론 승가 일원들 모두 스스로 계율과 종단 규율을 지켜주기 바라는 보이지 않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위의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진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 나가서도 옷을 쉽게 바꿔 입거나 반승복 차림이 예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여행길에서 만난 당당하지 못한 스님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수행자의 법복을 귀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입고 다니라고 말이다.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변복을 한다고 해도 스님들의 눈에 스님들의 모습은 보이는 것임을 기억하고, 승가를 위해 얼굴을 가리고 변복을 한다고 변명하지 말고, 그 행위가 떳떳하다면 언제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당당하게 승복을 입고 그 단정한 위의로 승가와 불법을 빛나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스님이라면 누구나 다 마음에 새기고, 매일 아침 예불에서 염송하는 ‘행선축원’의 이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겨보기 바란다.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견아형자득해탈(見我形者得解脫). 내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를 벗어나고 내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여지이다.’

진정 이 축원문을 입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기 바란다.

진명 스님 경기도 시흥 법련사 주지 jm883@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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