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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1983년 조계사승려대회와 비상종단

기자명 이병두

구세력 결집에 이루지 못한 꿈되다

1983년에 주지 두고 살인 사건
세간 회자되며 개혁 여론 고조
성철 스님 교시 발표 후 사퇴
비상종단 폐지, 녹원 원장 선출

1983년 9월5일 조계사 승려대회.
1983년 9월5일 조계사 승려대회.

1983년 8월6일 설악산 신흥사 주지 자리를 둘러싸고 칼부림이 벌어져 한 명이 죽고 중상자가 발생하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돈은 물론, 부모형제의 핏줄까지도 절연하고 출가의 길에 들어선 속세단절의 그 엄중한 선언을 무색케 하는 승려들의 잿밥싸움’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보도하면서 불교계를 질타했으며 그 뒤로 오랫동안 ‘신흥사 승려 살인사건’이라는 부끄러운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종단 내부 문제에 가능한 간여하지 않고 발언을 아끼던 종정 성철 스님도 사건 발생 25일 뒤인 9월1일 “미물 곤충도 우리를 증오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 위기를 느낀 대중들은 9월5일 조계사에서 승려대회를 열고 ‘비상종단운영회의’를 구성했다.

사진에서 보듯이 대웅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대회장’이라고 쓴 긴 현수막이 걸려 있고 단상 아래 오른쪽으로 ‘교단발전 앞당기자!’는 구호가 걸려 있는 대회장을 꽉 채운 대중들의 열기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종정 스님이 여기에 힘을 실어주어 진경 총무원장의 사퇴에 앞서 9월8일 서운 스님을 원장에 임명하자 억지로 버티던 진경 원장은 10월 초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회 결과로 탄생한 비상 종단은 새 종헌종법 개정안을 마련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 종책 추진에 나섰다. 총무원장 임기와 선출 방법을 바꾸고 종무행정 안정을 위해 ‘말사 주지 임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말사 주지 임기를 4년에서 10년으로 바꾸기로 의결하였다. 비구와 비구니만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2부중 제도를 6부중 제도로 바꾸기로 하여 재가 신도의 종단 참여 기회를 넓히기로 하였으며 사찰재산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재정 공개를 추진하고 승재가 대중이 함께 종무운영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비상종단이 내세운 개혁안에는 또 일제 강점기 사찰령 실시와 함께 시작된 본말사 제도를 폐지하고 광역자치단체마다 지방 교무원을 설치해 총무원 관할에 두는 중앙집권제를 실시하고 스님들이 사회봉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도를 법제화하였다.

이처럼 대대적 개혁을 꿈꾸었던 비상종단은 원로와 소장 승려 및 젊은 재가 불자가 원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서 출발했지만 중진들의 반발에 부딪힌 데다 승려대회를 촉발하고 개혁을 전폭 지지했던 종정 스님이 종헌개정안을 부정하는 교시를 발표하고 종정에서 사퇴하자 이에 힘을 얻은 반발 세력이 이듬해 9월1일 ‘해인사전국승려대회’를 열어 비상종단이 통과시킨 새 종헌을 무효화하고 비상종단 폐지를 결의한 뒤 총무원을 접수하여 직지사 녹원 스님을 새 원장으로 선출하면서 비상종단의 ‘거대한 개혁구상’은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1983년 9월5일 조계사 승려대회를 통해 종권을 장악하고 대대적 개혁을 추진하려 했던 비상종단은 한 해도 채우지 못하고 이듬해 9월 1일 해인사 승려대회를 통해 무너졌다. 그리고 그 10년 뒤인 1994년에는 3연임을 강행하려던 의현 원장이 4월10일 조계사 승려대회 결의로 쫓겨나고 말았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조계종 역사에서 개최된 몇 차례 승려대회에도 밝음과 어두움의 양면이 있을 터인데 이제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논의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46호 / 2018년 7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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