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우 스님 “중국차 제다법으로 우리 차 이야기는 그만하라”
혜우 스님 “중국차 제다법으로 우리 차 이야기는 그만하라”
  • 법보
  • 승인 2018.07.09 16:02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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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우 스님, 최성민 소장에 반론
‘다경’은 중국인이 쓴 차 담론
중국 식생활·자연환경에 맞춰져
기름 과하게 쓰는 중국인에겐
차의 차가운 성질이 바람직

물 좋은 한국은 차 맛 잘 발현
한·중은 물 차이로 제다법 변화
천수백년 전 ‘다경’ 얘기하면서
보이차 붐 걱정하는 것은 모순

최성민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이 최근 법보신문에 게재된 ‘지리산 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장 혜우 스님’ 기사와 관련해 이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보내왔다. 최 소장은 기고를 통해 “‘(寒한) 성미를 바꾸기(다스리기) 위해 여러 번 덖는다’는 식으로 단언해 버리면 녹차에 대한 오해와 음해에 영원히 빌미를 줄 뿐 아니라 차의 정체성 자체가 심히 왜곡돼 버린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장 혜우 스님은 7월9일 법보신문에 반론문을 보내왔다. 스님은 “한중일 녹차 제다법이 처음엔 ‘다경’의 제다법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지 모르나 한국과 중국은 물의 차이에서 제다법이 달라졌다”며 “중국차 제다법으로 우리 차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반박했다. 편집자

지리산 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장 혜우 스님
지리산 전통덖음차제다교육원장 혜우 스님

거두절미 하고. ‘미지한 위음최의(味至寒 爲飮最宜)’를 몰라서 예부터 우리 선조들이 한(寒) 한 것을 다스리는 제다법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다경’은 어디까지나 중국인이 쓴 책이고 당연히 중국인의 식생활과 자연환경을 기준으로 이야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우리의 자연환경과 식생활에 무리가 있다. 식생활을 들여다보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던 고려시대에도 서로의 식생활과 풍습은 달랐다.

그 이유는 물이다. 대부분의 물이 좋지 않은 중국은 음식을 조리하는데 기름을 많이 쓰고 대부분의 물이 좋은 우리나라는 물을 많이 쓴다. 이는 중국 사람들이 과한 기름 사용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몰라서 그리하는 것이 아니고, 좋지 않은 물로 조리를 하면 음식 맛이 떨어지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과한 기름섭취를 막기 위해 식간에 차를 마시며 음식을 섭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의 한한 성미가 그들에게는 좋은 성미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물로 대부분의 음식을 조리하는 우리는 식간에 차를 마시지 않아도 모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차를 마시려면 상을 물리고 따로 다과상을 보게 한다. 기름기가 적은 음식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중국 사람들과는 다르게 차의 한한 성미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작용한다. 차의 성미뿐만 아니라 맛과 향도 그렇다. 중국의 차가 지향하는 것은 짙은 향과 짙은맛이다. 그래야만 그들의 물에 맑은 향과 옅은 차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도 물 때문이다.

물이 좋지 않으면 향과 맛이 잘 발현되지 않기 때문에 그 물에 차를 마시거나 물맛을 좋게 하려면 그렇게 만들 수밖에 없다. 축약해서 말하자면 첫 번째 잘 덖어서 유념하여 정갈하게 습기를 줄여가며 말리는 것이 중국녹차 만드는 주요 방법이다. 향과 맛이 짙은 차는 차의 생엽이 가지고 있는 향과 성분을 최대한 유지시키기 위해 덖어서 꺼내 유념하기를 반복하는 우리 차 만드는 방법과는 다르다. 하긴 송나라 시대에 유단차를 만들 때 차의 진액을 짜내는 제다법이 있기는 했지만 그 차는 가루로 만들어 마시는 특별한 경우이다.

반면 우리 선조들은 세상의 모든 초근목피를 약재로 보아 성미를 가늠하고 음양을 구분하고 다스려 약 처방에 사용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들마저도 약석이라 해서 음양을 맞추고 성미를 조합하여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약성이 높은 약초인 인삼조차도 그 성미에 부작용이 있음을 알아 성미를 다스려 홍삼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런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서는 최상의 약으로 취급되는 차가 우리에게 부담스럽게 작용하는 원인을 차의 한한 성미로 보고 성미를 다스리는 수치법을 제다법으로 채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햇볕에 널어 백차를 만들고 있는 중국의 민가.
햇볕에 널어 백차를 만들고 있는 중국의 민가.

중국과 우리나라는 실생활에서 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서로 많이 차이가 난다. 중국의 녹차는 물맛을 좋게 하고 물에 섞인 석회성분을 가라앉히는 것으로 알려져 늘 마실 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중국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사용하기 때문에 찻물 병에 담아 마시는 차는 오래 담가 두어도 잘 우려지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조건이고 그러자면 잎을 생생하게 유지시켜야 잘 우려지지가 않는다. 이런 여러 조건에 맞는 차를 만드는 방법이 바로 중국 녹차 만드는 방법이고, ‘다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식간에는 물론 물이 좋으니 물도 가지고 다니지 않을 뿐더러 차를 마시려면 따로 물을 덥히고 다과상을 차린다. 이 말은 물을 마시기 위한 차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차다. 물이 좋기에 차의 향과 맛이 잘 발현되기 때문에 중국처럼 짙은 향과 맛을 추구하지 않는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차는 그렇게 용처가 다르다. 물론 중국도 따로 찻자리에서 마시는 고급차들도 생산하지만 여기서는 보편적인 녹차를 기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중일 녹차 제다법은 처음에는 ‘다경’에서 말하는 제다법에 뿌리를 두고 있었을지는 모르나 한중은 물의 차이에서 제다법이 달라진 것이고, 그 중에 일본은 차 만드는 철의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증제차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한중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일본은 기후의 영향으로 제다법의 변화된 것인데 차를 만들어 본 사람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온다습한 날씨에는 차 만들기가 최악의 날씨로 덖어내어 차를 식힐 때 다시 습기가 옮아 붙어 찻잎의 수분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차 솥에 덖는 부초차를 만들었으나 이런 이유로 수증기에 찌는 증제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부초법으로 만드는 곳도 드물게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수치법에 뿌리를 두고 있지는 않다.

일본에는 좋은 물이 많지만 화산 온천 지대가 많아 차를 마실만한 좋은 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물맛을 숨길 수 있는 차가 필요하다. 해서 증제차 특유의 향과 가루녹차를 가미해 물색마저 푸른빛으로 숨긴다. 지금에 이르러 차와 녹차의 말을 혼용해서 쓰기는 해도 녹차란 말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1200~1300년 전의 중국차 ‘다경’을 이야기하면서 보이차 붐을 걱정하는 것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논지이기에 반론을 한다는 자체가 어색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 자락 접고 행여 우리나라의 차 제다법이 ‘다경’에 있다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제다법이야기라도 아는 만큼 짚고 가자 싶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앞서 논쟁의 쟁점이 녹차의 제다법이 ‘다경’에 제시된 것과 같이 한한 성미가 좋은 것인데 뭔 성미를 다스리냐 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현 중국녹차의 현실을 보면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니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 유통되고 있는 중국 녹차는 중국차 전체 생산량의 70~80%가 녹차임에도 극히 일부분 고급차만 유통된다. 그것도 마니아층에서 유통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그렇게 만든 차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몸에 부담을 준다는 증거이자 임상 결과라 말할 수 있겠다. ‘다경’에 뿌리를 두고 만든 차가 바로 중국의 대부분의 녹차인데 이 녹차를 우리나라 물에 마시기에는 향과 맛이 강해 적절치가 않고 마시고 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니 차 수입상들이 녹차를 사들이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바로 이것이 제다법의 차이에서 오는 현실이다. 누군가 굳이 ‘다경’이 좋아 ‘다경’ 속의 차처럼 만들겠다면 말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모쪼록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용(用)과 처(處)를 잘 살펴야 한다. 용과 처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늘어놓아도 도태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입으로 들어가는 물건은 더 엄격하게 살펴야한다. 아무리 향기로우면 무엇 하랴, 아무리 신선한 맛이면 무엇 하랴. 그 향과 맛이 몸에 해가 된다면 다 허사이다. 이것이 제다를 하는 사람의 기본 마음가짐이다. 제다는 이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고 기술도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기술은 머리로 입으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것임을 알았으면 한다.

혜우 스님은 한국의 차는 중국과 달리 물을 마시기 위한 차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차라고 말한다. 보성 차밭.
혜우 스님은 한국의 차는 중국과 달리 물을 마시기 위한 차가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차라고 말한다. 보성 차밭.

더 주지해야할 것은 다도(茶道)나 다선(茶禪)은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지 차를 만드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다도나 다선은 차를 마시며 지향하는 이상이라면 차를 만드는 것은 지극히 현실이다. 차를 만드는 사람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셔서 해롭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고 거기에 향과 맛이 최상의 것이 되기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이 만든 것이 최상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일은 없다. 좋고 나쁨은 마시는 사람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에 의지하여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책 ‘다경’이나 초의 스님 중국차 요약본인 ‘다신전’은 그 정도에서 덮어두고, 안타깝게도 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지 않은 우리나라 차의 기록을 찾아, 남아있는 기록이라도 행간을 읽어 선조들의 제다법을 익혀 일취월장하여 우리나라의 최고의 제다인 되기를 기대해 본다.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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