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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암바팔리 ③

기자명 김규보

“붓다의 말씀에 거짓은 없다”

집착의 원인 일러 준 설법에
온갖 번뇌 한순간에 흩어져
망고나무숲 승단에 보시하고
훗날 출가해 아라한과 성취

세 번 절을 올리고 발등에 입을 맞춘 뒤 물러나 앉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붓다의 미소는 햇살처럼 자애로웠고 꽃처럼 평화로웠다. 지금껏 번뇌해왔던 순간도 멀리 달아나 버리는 듯했다. 왕자들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지을 때마다 내 얼굴은 어땠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고귀한 붓다시여. 부모에게 버림받고 남자에게 거짓 웃음을 팔아야 하는 삶이 고통스럽습니다.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란 망고를 주렁주렁 매단 나무의 그늘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대중이 일순간 침묵했다. 붓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암바팔리여, 그대는 집착하느라 현재를 허망하게 흘려보내고 있다. 그대의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늘에 충실해야 할 것이니, 그대에게 주어진 건 오직 현재일 뿐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과거에 사로잡혀 괴로워했던 날, 언제까지 왕자들을 상대해야 하는지를 두고 번뇌했던 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일그러졌던 암바팔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깃들었다.

“붓다시여. 제 고통이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집착을 어떻게 놓아야 합니까.”
“암바팔리여, 그대는 무상한 것에 집착해 왔다. 무상한 것을 움켜쥐고 내 소유라고 착각해왔기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지혜는 모든 게 무상하다는 진리를 알아차리도록 이끄니, 견해를 바르게 갖는 것으로 시작하는 여덟 가지 수행의 길을 걷는다면 괴로움은 소멸될 것이다.”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미소를 숨기기 힘들었다. 암바팔리는 활짝 웃으며 다시 한 번 붓다의 발등에 입을 맞췄다. 세상이 만든 고통에 시달려 왔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고통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암바팔리가 망고나무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이 눈부신 빛을 대지에 흩뿌리고 있었다. 세상이 이토록 밝았다니….

“고귀한 붓다시여. 거룩하신 말씀을 듣고 저는 번뇌를 여의는 길에 들어섰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한 가지 청을 드립니다. 이 망고나무숲을 승단에 바치겠습니다. 붓다와 수행자들께서는 부디 이곳을 수행의 장소로 삼아 주시길 바랍니다.”

암바팔리가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던 곳, 출생의 비밀을 알았던 곳, 번뇌에 몸부림칠 때마다 찾아와 거닐었던 곳, 망고나무숲은 고통의 근원과도 같은 장소였다. 그러면서도 망고나무숲을 외면하거나 버리지 못했던 건, 고통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집착해왔기 때문이다. 이제 암바팔리는 알았다. 더 이상 망고나무숲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다. 놓지 않으려 애를 쓸 이유도 없었다. 대신에 이곳은 붓다와 그 제자들이 수행하게 될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이다.

“암바팔리여.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왕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그대가 법을 따르겠다는 마음을 냈다니 기특하다. 그대의 청을 받아들이겠으니 계를 지키며 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하라.”

암바팔리는 우바이가 되었다. 습관처럼 거짓 웃음을 지었던 암바팔리의 얼굴엔 태양처럼 환하고 이슬처럼 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니가 되어 붓다와 제자들의 곁에 머물며 수행을 했다.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갔다. 아름다웠던 암바팔리 또한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다.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졌고 피부엔 주름이 파였다. 아라한과를 성취한 암바팔리는 열반에 들기 얼마전 자신의 거죽을 손으로 매만지다 붓다를 처음 만난 날 이후 그래왔던 것처럼 맑은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잘 다듬어진 내 몸은 늙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칠이 벗겨진 황폐한 집과 같습니다. 역시 붓다의 말씀에 거짓은 없습니다.” <끝>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7호 / 2018년 7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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