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생텍쥐페리의 미소
73. 생텍쥐페리의 미소
  • 김정빈
  • 승인 2018.07.09 16:05
  • 호수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소 짓는 그 순간 독일, 프랑스란 분별은 없다

작가이자 비행사 였던 생텍쥐페리
참전용사 체험 소설 ‘미소’에 담아
적에 잡히자 처형 직감 상황 묘사

미소 띤 얼굴은 신묘한 기적 같아
불교는 자비종교, 미소 떠오르게해
국가·민족 뛰어 넘는 포용의 종교
그림=근호
그림=근호

생텍쥐페리(A. Saint-Exupéry, 1900~1944)의 동화 ‘어린 왕자’는 세계의 모든 국가, 모든 언어권에 번역되어 읽히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 작품은 1억 부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에 대한 인기는 대단하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리용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 가까이에 있는 작은 시골 비행장에서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곤 했는데, 이것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20년, 파리 미술대학에 입학하였고, 다음 해에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가 되었다가 1922년에 전역했다.

1926년, 생텍쥐페리는 아프리카 북서부와 남대서양 및 남아메리카를 통과하는 우편 비행사로 일하게 된다. 당시의 비행기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기술 수준이 낮았고, 실제로 그는 1934년에 카이로에서 200km 떨어진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해 닷새 동안을 걸어 극적으로 구조된 적이 있다, 1938년에는 뉴욕에서 이륙해 비행하다가 과테말라에서 추락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비행사로 일하는 한편 그는 작가로서도 활동했다. 1931년, 그는 ‘야간비행’이라는 작품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하여 유명해졌고, 콩수엘로라는 여인과 결혼했다. 1938년에는 아카데미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받았다.

유럽에 전쟁 기운이 퍼져가던 1939년에 그는 공군 대위로 군에 복귀했다. 좌반신이 불편한 데다가 나이 또한 전투 비행을 하기에는 너무 많았지만 그는 굳이 자청하여 위험한 고공 정찰 업무를 맡아 수행했다. 1943년에 ‘어린 왕자’를 발표하였고, 다음 해 7월 31일, 코르시카의 포레타 비행장을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복귀하지 못한 채 실종되었다.

생텍쥐페리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스페인 내란에 참여해 파시스트들과 싸운 적이 있었다. 그때의 체험을 바탕삼아 그는 ‘미소’라는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미소’에서 주인공인 ‘나’는 전투 중에 적에게 포로가 되어 감방에 갇힌다. 그는 다음 날 자신이 처형되리라는 걸 직감한다. 그 이후의 상황을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내가 죽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공포감 때문에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담배를 찾아 호주머니를 뒤졌다. 몸수색 때 발각되지 않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서 말이다. 다행히 담배 한 개비를 발견했다. 나는 손이 떨려서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기조차도 힘들었다. 하지만 성냥이 없었다. 그들이 모두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나는 창살 사이로 간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혹시 불이 있으면 빌려주겠소?” 간수는 나를 쳐다보더니 어깨를 으쓱하고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기 위해 몇 걸음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다가와 성냥을 켜는 순간, 무심결에 그의 시선이 내 시선과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우리 두 사람의 가슴속에, 우리 두 인간의 영혼 속에, 하나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나의 미소는 창살을 넘어가 그의 입술에도 미소가 피어나게 했다. 그는 내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나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명의 간수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새로운 차원이 깃들어 있었다.

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자식이 있소?”
“그럼요, 있고말고요.”

나는 얼른 지갑을 꺼내 허둥지둥 나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람 역시 자신의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면서 앞으로 계획과 자식들에 대한 희망 등을 이야기했다.

내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나는 다시는 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 간수에게 고백했다. 내 자식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는 것이 무척 슬프다고 말하자 그의 눈에 눈물이 어른거렸다.

갑자기, 간수는 아무런 말 없이 일어나 감옥 문을 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나를 이끌어 감옥에서 벗어나 뒷길을 이용해 마을 밖까지 나가도록 안내해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서서 돌아갔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미묘한 공양구”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미소 띤 얼굴은? 나는 “미소 띤 그 얼굴은 신묘한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생텍쥐페리가 ‘미소’라는 소설에서 그린 미소는 그랬다. 불교는 자비의 종교이고, 자비는 미소가 떠오르게 한다. 그가 프랑스인이든 독일인이든 미소를 떠올리는 순간 그는 불교인이다. 불교는 국가나 민족으로 나눌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인류 모든 이들을 위한 종교, 얼굴에 미소를 띠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종교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47호 / 2018년 7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