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고가도로
13. 고가도로
  • 임연숙
  • 승인 2018.07.10 10:01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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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포착,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다

평범한 장소·장면의 추상적 표현
그 속의 경험들 각자가 다르기에
사람마다 떠올리는 이미지 달라
민재영 作 ‘고가도로’, 한지에 수묵채색, 45.5×53cm, 2016년.
민재영 作 ‘고가도로’, 한지에 수묵채색, 45.5×53cm, 2016년.

본격적인 장마철을 실감하게 요 며칠 많은 비가 내렸다. 비가 오면 언제 그칠까, 생각하고 안 오면 언제 비가 좀 오려나 걱정을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 전까지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못 살 것 같았고, 더 올라가면 너무 추워서 언제 봄이 올까 기다렸었다. 바쁘면 너무 일이 많아서 내 인생은 왜 이리 고달픈가 생각했다가, 좀 한가해 지면 왠지 마음이 불안하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뒤처지는 것 같고, 뭔가 빼 먹은 것 같다. 현장에서 은퇴하면 뭘 할지 벌써 할 일을 줄 세워 놨다. 뭔가 100%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그 완벽함이란 무엇일까.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배워야 하는 일인가 보다.

나에게 작가들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는 그 순간만큼은 정지된 몰입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말없이 어떤 정지된 장면이 예전의 어떤 기억을 꺼내 보게 하는 작품들이 있다. 그냥 그림은 잔잔하고 조용한데 말이다. 민재영 작가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범한 장소와 평범한 장면을 포착한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쳤고 봤을 법한 장면이다. 우리가 그냥 스치고 지나쳤던 평범한 풍경을 색다르게 각각 다른 경험으로 읽히게 한다. 왜냐하면 각자의 경험과 느낌이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살고 있는 대도시의 풍경을 어떤 격렬함의 감정이 배제된 객관적 시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 제목은 그저 ‘고가도로’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고가도로 풍경인 듯, 반대로 뜨거운 오후 태양으로 아스팔트가 이글거리는 듯하기도 하고, 어스름한 저녁녘인가 싶기도 하다. 화면의 반 이상은 수묵으로 대담하게 처리되어있다. 그 부분만 보면 수묵 추상화 같다. 도로 위의 차들의 표현도 역시 수묵과 채색을 중첩하여 색점과 선으로 반복하여 표현하였다. 먹과 채색이 하나의 재료인 듯 서로가 잘 엉겨 붙어 발묵과 발색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오랫동안 작가가 추구해온 기법이다. 전통기법에서 붓을 똑바로 하여 작가의 기를 붓끝으로 옮겨 긋는 중봉선을 가로로 반복하여 인물군상과 풍경을 표현하던 그동안의 기법에 더해 먹의 농담 표현이 작품에 한결 여운을 남긴다.

“그동안의 작업들은 행동반경을 구성하는 물리적인 동선(動線)에 조응하는 내재적인 동시대 체험풍경으로서의 이미지를 채집하고 그것을 재현하려는 시도들이었다. 일회성의 특이하거나 진기한 장면이 아니라 이어 붙여보면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법한 한국-대도시 거주생활의 전형성, 그 단면을 드러낸 장면들에서 각자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작가노트 중 발췌)
작가가 찾는 작품의 소재는 늘 작가 주변의 일상들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다. 늘 작은 기다림과 걱정과 희망이 반복되는 내가 겪는 일상이 작품 속에 담겨있다. 대상을 묘사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담담하게 담백하게 그 순간을 포착할 뿐이다.

수묵의 다양한 변주는 젊은 작가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수묵산수화라는 전통의 틀에서 현대라고 하는 시대성에 대한 작가들의 끊임없는 고민의 시간들이 좀 더 다양한 작가적 양식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발판 아래 다음 세대로의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 이루어지는 듯하다. 유독 한국성, 한국미에 대한 고민이 많은 한국화단에서 작가들의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관객을 즐겁게 한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47호 / 2018년 7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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