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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사 전재성 박사의 고난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7.16 10:03
  • 수정 2018.11.06 16:52
  • 호수 1448
  • 댓글 0

30여년간 불교경전 번역에 매진
초기불교 활성화 이끌어낸 주역
한국불교 바꾸는 참다운 개혁가

21세기 최고의 역경사라는 퇴현 전재성(66) 박사. 그가 이번에는 새로운 ‘앙굿따라니까야’를 선보였다. 지난 2008년 11권으로 출간한 ‘앙굿따라니까야’를 이번에 역주와 색인 등을 대폭 보완해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덕분에 초기불교에 관심 있는 불자들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을 맡고 있는 전 박사는 우리시대 최고의 불경 역주가로 꼽힌다. 지난 30여년의 세월 동안 그는 새롭게 번역한 우리말 불경을 들고 늘 우리 곁을 찾아왔다. 전 박사가 지금까지 펴낸 책들은 원고지로 환산하면 수십만 매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먼 훗날 누군가 이 시기의 한국불교사를 다룬다면 전 박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그가 우리 불교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은 초기불교의 불모지였다. 동국역경원에서 초기불교 경전에 해당하는 한역 아함을 우리말로 번역했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편찬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이뤄진 데다가, 한역의 장단점을 잘 살려야 할 당시 우리 불교학계의 역량도 크게 부족했던 탓이다.

이 때문에 초기불교는 근래까지 ‘소승’으로 홀대받았고, 전문연구자도 극히 드물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쏟아졌던 세계 불교학계의 흐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었다.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전 박사다. 그가 불경 번역의 외길을 걷기 전까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한국전쟁 막바지 가난한 실향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심한 화상을 입어 평생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1972년 서울대 농화학과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불교학회장을 맡았고 민중불교 이론을 처음 주창하며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다.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과 구속이 반복되면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반강제적으로 입대한 군대생활을 겪으며 늑막염과 폐결핵까지 생겨 1년 만에 의가사제대 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가 선택한 것이 독일 유학이었다. 그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사는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 선생을 만났고, 팔리대장경을 암송하는 페터 선생의 당부에 팔리경전을 한글화하겠다고 다짐했다.

1989년 귀국한 전 박사는 경전번역에 착수했다. 하지만 연구소에 불이 나 외국에서 수집한 번역 자료들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렇게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1999년 출판된 것이 쌍윳따니까야 첫 권이었다. 이후 주변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총11권의 ‘쌍윳따니까야’ 완역을 시작으로 ‘맛지마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디가니까야’ 등 4부 니까야 전체를 우리말로 옮겼다. 또 ‘법구경’ ‘우다나’ ‘숫타니파타’ ‘이띠붓따까’ ‘율장대품’ ‘율장소품’ ‘율장 비구계’ ‘율장비구니계’를 비롯해 대승불교 대표 경전인 ‘금강경’ ‘천수다라니’ ‘십지경’ 등도 속속 펴냈다. 여기에 ‘범어문법학’, 세계 최대 어휘의 ‘빠알리어사전’, 국내 첫 우리말 티베트어 사전인 ‘티베트어-한글사전’까지 펴냈다.

이재형 국장

더욱이 이들 번역서는 각국의 연구성과를 충분히 반영한데다가 상세한 주석까지 달려 경전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최대한 우리말을 사용함으로써 불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전 박사의 열정과 전문성, 성실함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역경불사는 초기불교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고, 불자들 사이에서 초기경전 읽기 열풍으로 이어졌다.

지난 수십 년째 취미도 주말도 없이 매일 7~8시간 역주를 한다는 전 박사. “부처님 가르침은 잘 지어진 거대한 건축물이자 주제가 분명하고 변주가 계속되는 탁월한 교향곡”이라는 그가 바로 불경 번역을 통해 한국불교를 바꿔가고 있는 참다운 개혁가다.

mitra@beopbo.com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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