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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셋슈 토요의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기자명 김영욱

마음은 실체 없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자신 마음 편하게 해달라는
불안한 혜가 요청에 달마는
“너의 마음 가져오라” 말해

셋슈 토요 作, 혜가단비도, 1496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183.8×112.8㎝, 일본 아이치(愛知) 사이넨지(齊年寺).
셋슈 토요 作, 혜가단비도, 1496년, 종이에 먹과 엷은 채색, 183.8×112.8㎝, 일본 아이치(愛知) 사이넨지(齊年寺).

入雪忘勞斷臂求(입설망로단비구)
覓心無處始心休(멱심무처시심휴)
後來安坐平懷者(후래안좌평회자)
粉骨亡身未足酬(분골망신미족수)
눈 속에서 괴로움 잊고 팔 끊어 구하니/ 마음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비로소 마음 편하구나.
훗날 편안히 앉아 평온한 마음을 누리는 이여/ 뼈를 부수고 몸을 잊어도 보답하기에는 모자라네.

‘전법보기(傳法寶記)’ 중에서.

달마와 신광(神光, 487~593)의 대화가 오간다.

“그대는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가?”
“감로의 문을 열어 이 어리석은 중생을 제도해주소서.”
“어찌 작은 공덕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다운 법을 바라는 것인가? 그저 헛수고일 뿐이네.”

달마의 말을 들은 신광이 칼을 뽑아 자신의 왼팔을 잘랐다. 이에 달마가 그에게 가르침을 전하니, 그가 곧 선종의 제2조 혜가(慧可)이다. 이 일화는 훗날 ‘혜가가 팔을 자르다(慧可斷臂)’, ‘팔을 잘라 법을 구하다(斷臂求法)’로 불리며 마음과 분별에 관한 중요한 화두로 불가에서 널리 오르내렸다.

일본 무로마치(室町)시대의 승려이자 화가인 셋슈 토요(雪舟等陽, 1420~1506?)가 그린 ‘혜가단비도’는 이 이야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그림이다. 달마는 암벽 속에서 묵묵히 면벽 수행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눈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대하는 듯 한 곳만 응시하고 있다. 미동도 없는 채 꼿꼿하게 앉은 자세와 그 형상을 이룬 두툼하고 묵직한 선의 흐름은 흔들림 없는 달마의 내면을 암시한다. 한편 가르침을 구하러 온 혜가는 자신이 끊어버린 왼팔을 부여잡고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꽉 다문 입만이 가르침을 향한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셋슈는 달마의 정적과 혜가의 괴로움을 서로 다른 뉘앙스로 표현하여 실체 없는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 기묘한 분위기는 혜가의 얼굴을 통해 보는 이의 불안한 마음을 끌어내지만, 한편으로는 달마의 모습을 통해 보는 이에게 마음의 평온함을 전해준다.

다시 대화가 오고 간다. 혜가가 달마에게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달마가 그에게 너의 마음을 가지고 오라고 말했고, 혜가는 마음을 찾아도 편안함을 얻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이에 달마가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도다”라고 말했다. 이윽고 혜가는 자신의 불안함과 괴로움을 떨쳐냈다.

마음의 분별. 그것은 내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이 마음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분별은 착각으로 인도하고, 착각은 마음의 불안을 끌어내는 것이다. 달마가 혜가에게 마음을 가져오라고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

마음은 마음자리에 있다. 어디에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비록 마음은 실체가 없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그 자리에 있다고 깨달으면 편안한 것이다. 팔을 끊는 것은 눈 속에 오랫동안 서 있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인데, 마음을 찾을 수 없을 때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던가.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48호 / 2018년 7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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