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찰은 국립박물관이 아니다

따스한 봄날이면, 단풍이 울긋불긋한 가을날이면, 소복소복 쌓인 눈이 한껏 정취를 자아내는 겨울날에도,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같은 여름날에도 대한민국의 사찰에는 가지각색 차림의 다양한 계층들이 어김없이 찾아들어 소란스럽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에게, 사찰은 쉬어가는 공간이고, 둘러보는 공간이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공간이고, 소풍을 가는 장소이고, 여행길에 한 곳쯤은 들러 가는 곳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찰은 신행공간이기 힘들고, 수행공간이기 힘들다. 관람객(?)들의 소란스러움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왜곡된 인식이 빚어내는 몰염치함이, 전통문화가 살아서 숨 쉬고 전승되는 신행과 수행의 공간을 마구 어질러 놓는데도, 한숨조차도 내쉬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문화재의 보고, 전통문화가 여전히 살아서 숨 쉬는 공간! 어지간한 식자층 행세를 하는 이들에 의해서 불리는 사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맞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사찰들은 유무형의 갖가지 전통문화가 살아서 숨 쉬는 공간이고, 이 땅의 역사와 문화가 서린 유무형의 문화재를 한가득 품고 있는 문화재의 보고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박물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식자층들도 쉽게 잊어버리는 사실이 있다. 그 안의 법당, 그 안의 부처님과 보살상은 문화재가 아니라 경건한 신앙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사찰은 안마당과 바깥마당은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니라 불교인들이 법석(法席)을 펼치고 신행생활을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양식이 있다는 그들마저도 쉽게 외면하고 무시해버린다.

간혹 어떤 이들은 사찰을 둘러보면서 입장료를 받는다고 항의하기도 하고, 어떤 공간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이들이 곧잘 ‘사찰은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들의 말도 맞다. 이 땅에 살았던 많은 이들의 숨결이 맞닿아 있으니,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유산이란 말은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말은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더 멀게는 천여 년 이상을 이 땅의 불교인들이 가꾸고, 다듬고, 지탱해온 불교인들의 삶이 전승된 독자적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종교 공간이라는 특성상 많은 이들에게 문을 열어 맞아들이지만, 무작정 공유되고 무작정 넘나들면서 놀이공원이라도 온 듯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그런 공간은 아니다. 엄격히 말하면 사찰은 마음대로 둘러보고 무턱대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좋은 박물관도 아니고, 일반에게 제한 없이 공유되는 공공재도 아니다.

사찰을 방문해서 전통문화를 한껏 체험한다. 정말 좋은 일이다. 템플스테이는 그 좋은 예의 하나일 것이다. 사찰에서, 불교계에서 사찰공간과 사찰의 살아있는 전통문화를 느낄 기회를 내외국인들에게 기꺼이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만족해하는 체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체험은 일정 부분 사찰과 그 사찰을 수행과 신행과 중요한 삶의 공간으로 삼는 불교인들의 배려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들의 독립된 공간을 기꺼이 내외국인들에게 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체험이란 이야기이다.

사찰을 방문하는 수많은 이들도,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연히 사적(私的)인 수행과 신행의 공간을, 불교인들이 최소한의 대가도 없이 양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 집 마당과 안방을 보여주면, 적어도 고마워는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사실도.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huayen@naver.com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