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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 발로 말타기

기자명 임연숙

눈으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을 보다

지적장애 가진 화가 데니스 한
연습에 연습 더하며 재능 연마
감동의 순간·느낌 화폭에 담아
그림이 갖는 치유능력 보여줘

데니스 한 作 ‘한발로 말타기’, 100×65cm, 캔버스에 유화.
데니스 한 作 ‘한발로 말타기’, 100×65cm, 캔버스에 유화.

작가 심현지 선생은 주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유리모자이크와 프레스코 벽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활동을 해왔다. 한창 활발하게 작품 발표와 일을 했던 선생님은 한동안 작업을 멈추고 조카 데니스에게 그림을 가르쳤다. 이분의 꿈은 자신이 가르친 데니스의 그림을 모아 고향 광천 오서산 자락에 미술관을 만드는 일이다. 데니스는 지적장애가 있는 청년이다. 아기 때 부모와 미국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열병을 앓았는데 뇌까지 영향을 미쳐 장애를 갖게 되었다. 자세한 경위는 알지 못하나 늦게나마 조카의 미술적 재능을 발견해 숱한 연습과 연습을 거듭한 끝에 개인전을 열만큼 작품을 모으게 됐다.

데니스를 본지도 5~6년이 지났다. 잠시 서울에 다니러 오신 선생님을 통해 최근 데니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데니스는 미국에서 부모님과 지내며 부모님의 세탁소 일을 돕는다고 한다. 아주 간단한 일, 자신에게 주어진 단순한 일을 우직하리만치 해내는 데니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최근 데니스의 그림이 궁금해진다.

데니스의 그림 ‘한발로 말타기’는 이모와 파리에 살면서 매일 그림 그리기를 하던 때의 작품이다. 이모는 데니스에게 파리의 미술관을 다니면서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많은 그림을 보여주고 자극을 주고 따라 그리게 했다. 그리고 공연장이나 서커스 공연을 보여주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어떤 힘이 그녀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궁금한 일이다. 데니스는 그림 그리는 일을 싫어하지 않았고 집중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여러 점의 드로잉을 통해 주변사람들을 그려나갔고, 때로는 명화를 따라 그리기도 했다.

이 그림은 사물을 기술적으로 잘 묘사하고 표현했다기보다 순간의 느낌을 활달한 색감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냈다. 아마도 말 위에서 하는 서커스 장면인 듯하다. 사람들의 크기도 제각각이고 말 위인지 공중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즐겁고 신기한 풍경을 그린 것 같다. 두 점의 그림을 연결하여 그린 그림으로 중앙의 흰 말은 크기로 보나 비중으로 보나 데니스에게 큰 감동을 준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똑같이 묘사한 그림보다 때로는 표현적인 그림이 그 분위기와 느낌을 더 잘 표현할 때가 있다. 이 그림이 그렇다. 축제 같은 느낌과 아슬아슬한 서커스의 신기함이 담긴 그림이다.

감동을 시각화한다는 것, 본 것을 있는 그대로 화면에 재현해 낸다는 것, 느낌을 색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데니스의 스승이자 이모는 이러한 일이 가능하도록 그를 이끌었다. 숨을 재능을 찾아주고 그가 잠시라도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고, 무엇보다 감동이라는 자극을 주어 그러한 일들이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 뭔가 터지기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알기에 새삼 선생님의 노고가 마음에 다가온다.

심현지 선생님의 꿈은 데니스의 미술관과 더불어 데니스와 같은 아이들의 미술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사명감 때문이기보다는 사람마다 갖고 있는 아픔을 치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나가는 방법에 대한 제안이라고 말한다. 이 무더위에 서울을 찾은 노 작가의 꿈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과 너무 힘든 일이라 어려울 텐데 하는 생각이 반반이다. 주변 모두가 말리는 일이기도 하다. 데니스가 보여준 희망과 기쁨이 잊히지 않고 널리 공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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