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떠돌이 신세가 된 불상들
23. 떠돌이 신세가 된 불상들
  • 이숙희
  • 승인 2018.07.24 10:59
  • 호수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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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 불상·석탑의 타지역 이동은 범법 행위

경북 군위 석조비로자나불상은
대구 청계사 거쳐 광덕사 보관
안동 금소리 절터 불상·석탑은
울산 육지장사 뒤편에 존치 중

누가 언제·어떻게·왜 옮겼는지
정확한 배경·과정 알 수 없으나
떠돌이 신세 되어 현 위치 정착

지정·비지정 막론 모든 문화재
절취·손상·은닉은 명백한 범죄
1. 법성사 석조비로자나불입상, 고려, 높이 147㎝.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제공. 2.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과 삼층석탑, 통일신라 후기. 3.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 통일신라 후기, 높이 175㎝. 사진 2·3, 최은령 부산항 문화재감정위원 제공
1. 법성사 석조비로자나불입상, 고려, 높이 147㎝.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제공. 2.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과 삼층석탑, 통일신라 후기. 3.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 통일신라 후기, 높이 175㎝. 사진 2·3, 최은령 부산항 문화재감정위원 제공

2014년 4월7일, 경상북도 군위군 법성사에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상과 석조불상편이 2006년 10월16일 이후 없어졌다는 도난신고가 들어왔다. 법성사 주지스님 말에 의하면 비로자나불상은 1998년 가을쯤 사찰 야산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경내로 옮겨와 보관하고 있었는데 2∼3년 전에 석모씨가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할 것을 요청해 불상을 넘겨준 후 불상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군위 법성사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이 대구 수성구 청계사 경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사진 1) 이 두 절은 거리상 그다지 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법성사 비로자나불상과 불상편에 대해서는 ‘문화유적분포지도’(대구대학교 중앙박물관, 2005)와 ‘한국의 사찰문화재 대구광역시/경상북도Ⅰ’(문화재청, 2007.5)에 이미 수록되어 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상과 불상편은 2007년 5월 이후에 법성사에서 청계사로 옮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석씨로부터 비로자나불상을 인수받은 청계사는 대구시에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청계사 측에서는 석씨에게 ‘소유권 포기각서’와 함께 불상을 돌려주었다고 하나 현재는 대구 달성군 광덕사 경내에 보관되어 있다. 언제 어떤 연유로 인하여 법성사 비로자나불상이 광덕사까지 흘러들어 오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였다.

법성사 석조비로자나불입상은 높이 147㎝로 대좌가 없어진 상태이다. 불신과 배 모양의 광배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광배 윗부분이 일부 깨어져 있고 얼굴은 눈이 깊게 파여 있어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사암제로 만들어진 탓인지 마멸이 많이 진행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불상의 신체비례는 알맞은 편이나 불신의 표현과 서 있는 자세에서 다소 경직된 느낌을 준다. 양쪽 어깨를 덮은 법의의 옷주름 역시 가슴 위에서 U자형의 주름을 만들면서 발목까지 내려와 있으나 자연스럽지는 않다. 두 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왼쪽 둘째손가락의 끝부분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전형적인 지권인의 형태를 하고 있다. 지권인을 하고 있는 손은 몸에 비해 작은 편으로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상과 비교된다. 법성사 비로자나불상과 같은 입상 형식은 보기 드문 예로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 불패형(位牌形)의 구획이 있어 주목되는 상이다.

이와 유사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불상이 최근 조사되었다. 울산시 중구 유곡동에 위치한 육지장사란 사찰 뒤편에 석불좌상이 3층 석탑과 함께 놓여 있다.(사진 2) 이 불상과 석탑에 대해서는 일찍이 1967년 3월에 나온 ‘안동 금소동 탑상(고고미술 제80호)’라는 논문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 조사 보고에 의하면, 불상과 석탑은 원래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60번지 민가 한쪽 편에 나란히 있었던 것으로 당시 파손이 심하여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석불좌상은 머리와 양팔이 절단되었고 얼굴은 파손이 심하여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한다.

2012년 12월에 발간된 ‘한국의 사지 경상북도Ⅱ’(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의 ‘안동 금소리사지(琴韶里寺址)’에도 기록되어 있다. 안동 금소마을 내에 위치한 금소리 절터에는 석불과 3층 석탑이 놓여 있는데 주변에서는 사찰 관련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기와편만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석불좌상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이나 석탑은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약 5m 떨어진 563-17번지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근래에 석탑의 상층기단 면석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아 따로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안동 금소리 절터의 불상과 석탑은 2012년 12월 이후 울산 지역으로 옮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의 내막이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사찰로 추정되는 폐사지에 있었던 불상과 석탑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다는 것은 분명 문화재보호법상 위배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상과 석탑은 울산 지역에 그대로 남아 있다.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은 높이 175㎝로 팔각연화대좌 위에 놓여 있는데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파손과 오염이 심한 편이다. 머리와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었으나 최근에 보수하면서 이목구비를 간략하게 새겨 넣었다. 목과 오른팔에는 시멘트로 이어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불상의 머리가 몸에 비해 작고 허리는 잘록하게 표현되어 있어 안정감 있는 모습이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식으로 입었으며 왼쪽 어깨 위에만 옷자락이 살짝 접혀 있다.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불상으로 보인다. 결가부좌한 다리 역시 오른쪽 무릎만 남기고 절반 이상이 파손된 상태이다. 팔각연화대좌는 상대, 중대, 하대의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파손이 심한 편이다. 상대석의 경우는 형태를 거의 알아볼 수 없으나 앙련의 연화문이 조각된 것이 확인된다. 8각의 중대석에는 각 면에 안상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하대석은 2단으로 상단에는 복련의 연화문이 조각되었고 8각인 하단에는 각 면마다 안상을 새겼다.

안동 금소리 석불좌상은 신체표현, 착의법, 대좌 형식 등에서 전형적인 통일신라 후기의 9세기 불상양식을 보여준다. 이런 스타일의 불상은 김천 갈항사지 석불좌상을 비롯하여 의성 고운사 석불좌상과 영주 풍기 비로사 석조아미타불좌상, 경주 안계리 석불좌상 등 경상북도에서 조성된 통일신라시대 불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때 사찰의 중심이 되어 많은 신앙을 받았던 군위 법성사 석조비로자나불상과 안동 금소리사지 석불좌상은 원래의 사찰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상 도난 사건은 대개 외부의 침입에 의한 것이 많은데 사찰이나 폐사지에 있던 불상이 시중에 돌아다니다가 들통이 나는 일들도 종종 있다. 실제로 불상이 예배되고 보호되어야 할 신성한 사찰 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정 또는 비지정문화재에 해당하는 모든 문화재를 절취, 손상, 은닉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처벌규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재의 도난과 불법거래는 매년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처벌의 위험보다는 도난문화재의 구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난문화재를 고가에 매입하는 구매자가 있는 한, 불법적인 거래가 가능한 유통조직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또한 도난문화재를 구매하더라도 몇 차례의 세탁과정을 거치게 되면, 합법적으로 자기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49호 / 2018년 7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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