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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시 한 수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유례없는 폭염으로 인해 자칫 국가재난 수준의 재앙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그런데 이 폭염에 이 땅의 사부대중 마음을 더욱 뜨겁게 달구어가는 곳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청사가 자리하고 있는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 주변이다.

한때 ‘견지동 45번지’로 통칭되기도 했던 이곳은 지난 20세기 이후 숱한 불교 갈등의 상처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도 그러했고 1950~60년대 정화운동이 전개되던 시기나 1994년 개혁종단이 출범할 때, 이곳은 항상 치열한 승가의 갈등이 표출되던 화택(火宅),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조계사 주변의 상황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특히 노스님 한 분의 단식정진은 이제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계종 승가 구성원 모두에게 설조 스님을 살리는데 온갖 지혜를 모아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유배시절 해남 대흥사 스님들과 많은 교분을 맺었다. 특히 그는 자신보다 열 살 아래인 아암 혜장(兒庵 惠藏, 1772~1811)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는데, 그 결과 다산의 문집에는 혜장 스님을 주제로 한 시문이 다수 남아 있기도 하다. 혜장 스님은 내외전에 두루 통달했던 대표적 학승이었다. 스님의 빼어난 강학을 전해받기 위해 그의 문하에는 30세 무렵부터 수많은 대중이 몰려들었다고 하며, ‘주역’과 ‘논어’를 이해하는 수준은 다산이 감복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산은 혜장 스님에게 무려 70여개의 운으로 이루어진 장편의 시를 지어 전해주었다. ‘집을 그리는 칠십운. 혜장에게 부치다’라는 제목의 시인데, 이 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음미해볼만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아! 죽이나 마시는 승려들/ 신 삼고 나가면 바랑 지고/ 땅강아지나 개미 같이 약한 그 목숨들/ 대들고 말잘 것도 없는데도/ 그런데도 굴욕을 늘 당하여/ 백성들 축에 들지를 못 한다”라는 대목은 이 시기 스님들이 처해있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다산은 당대 어느 유학자보다 높은 식견을 지니고 있던 혜장 스님을 존중하였다. 그러나 혜장의 신분은 ‘땅강아지나 개미(螻蟻)’와 다를 바 없는 승려에 불과하였음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 다산은 당시의 승려들을 향해 늘상 굴욕을 당하며 백성들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표현을 하였다. 조선시대 스님들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시구가 아닐 수 없다.

혜장 스님은 40세의 이른 나이로 입적하였다. 스님의 법호에 ‘아이 아’자가 붙은 사연이나 스님이 술을 많이 드셨다는 기록은 당시의 처참했던 승려 신분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산은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며, 다양한 시문을 통해 이러한 안타까움을 표현하였던 것이다. 혜장 스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일부에서는 스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던 것 같다. 다산은 이를 두고 “내가 처음 혜장을 보았을 때 솔직하고 꾸밈새가 없었으며 남에게 아부하는 태도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를 아는 이는 그를 귀히 여기지만 모르는 자는 교만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설명할 수도 없을진대 나 자신을 내가 닦는 길 그것만이 고명(高名)을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이리라”는 견해를 남기기도 하였다.

다산의 표현처럼 명예가 한 계단 올라가면, 비방은 열층계나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집집마다 다니면서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산은 “맑은 옥이기에 하자가 잘 보이는 것이지, 흙탕물이야 누가 안 맑다고 뭐랄 것인가. 그리 생각해 내 허물로 받아들이면 내 덕이 더욱 높아지겠지”라고도 하였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께 다시는 이 땅의 스님들이 ‘땅강아지나 개미’처럼 취급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제 설조 스님의 손을 꼭 붙잡고 조계사 일주문을 나서시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50호 / 2018년 8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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