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늪에서 벗어나 불성 찾는 구도소설
무명의 늪에서 벗어나 불성 찾는 구도소설
  • 심정섭 전문위원
  • 승인 2018.07.30 11:45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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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기 쉬운 빛’ / 이갑숙 지음 / 얘기꾼
‘꺼지기 쉬운 빛’<br>
‘꺼지기 쉬운 빛’

요즘 말로 흙수저에서 벗어나고 싶어 고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도전했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하고 드디어 세상 잣대로 금수저 대열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사랑, 명예, 돈, 권력 등을 향해 딸랑거리기 시작했다. 그 세상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어김없이 소유와 집착, 사랑과 미움, 질투와 연민, 그리고 죄책감 등 감정의 찌꺼기가 내뱉어졌다. 금수저 생활은 얼핏 화려한 듯했지만, 껍데기를 덮어쓴 그 감정의 찌꺼기 때문에 자꾸 허기와 갈증이 왔다. 그때 마주한 게 ‘반야심경’이었다. 그렇게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가르침에 빨려 들어갔다.

1975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운항만청 사무관, 주영국대사관 참사관 등을 거쳐 부산항만공사 사장과 사조산업 대표이사 등을 역임한 소설가 이갑숙은 퇴직 후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을 쓰기 위해 서점과 도서관을 기웃거리며 인문학 분야의 책을 뒤지면서 거기에 어김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답을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았다.

‘꺼지기 쉬운 빛’은 소설가 이갑숙이 제2회 법계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품에서 매끈함이 묻어나지는 않지만,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 없던 작중 인물이 친구와 아내를 잃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다 사찰을 순례하며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꺼지기 쉬운 빛’의 찰나적 깨달음을 맛보고 불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진솔하게 서술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설은 작중화자가 안데스 산맥 트레킹을 하며 죽은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딸 지서와 진정한 관계 형성을 기원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작품은 작중화자 강숙과 진태, 연희 등 세 남녀가 어린 시절 함께 자라며 우정과 사랑을 나누다 성인이 된 이후 질투와 오해로 극단적 선택을 하지만 속죄와 화해를 추구하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강숙은 연희를 흠모하면서도 진태가 연희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연희를 멀리한다. 그럼에도 진태와 연희가 결혼하기 전 연희를 범했고, 진태는 딸 지서가 친자식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친자식으로 키웠다.

작중화자 강숙은 월정사 수련회에서 삼보일배를 마친 후 죽은 친구 진태를 마음속에 불러놓고 그 앞에서 고백을 했다. 사진은 월정사 단기출가 수련생들의 삼보일배.<br>
작중화자 강숙은 월정사 수련회에서 삼보일배를 마친 후 죽은 친구 진태를 마음속에 불러놓고 그 앞에서 고백을 했다. 사진은 월정사 단기출가 수련생들의 삼보일배.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순탄할 것 같던 세 사람 삶은 강숙이 근무하던 해운회사의 원양어선이 침몰하면서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침몰사건과 관련해 강숙이 처벌을 받게 되는 시점에서 뜻밖에도 진태가 편지를 보내 자신이 기관실 밸브를 열어 어선이 침몰했으며,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후 모든 것을 자신이 안고 가겠다며 스스로 삶을 마감한 진태가 떠나자 강숙은 모든 것을 침묵하기로 한 채, 연희와 결혼해 애증이 얽힌 삶을 살아간다. 진태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알게 된 연희는 강숙이 고백과 속죄를 통해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강숙은 무명에 갇혀 이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연희가 사고로 의식불명상태에 빠지자, 강숙은 그녀의 인공호흡기를 직접 제거하기에 이른다.

진태가 그렇게 스스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모른 척 한 것도, 연희의 삶을 직접 마감하게 한 것도 다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자위했던 강숙은 연희 사망 후 산과 사찰을 두루 돌아다니며 ‘마음 챙김’의 정신적 수련 과정을 겪는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거쳐 무명에 갇힌 자신이 소모적 삶을 살아왔음을 깨닫고, 글쓰기를 통해 서서히 무명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꺼지기 쉬운 빛’은 자칫 진부하고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부처님 가르침을 직접 전할 수는 없지만, 존재에 관한 해답을 부처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우리의 본래면목인 불성을 찾고 진정한 만남과 관계의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이끌고 있다. 1만35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50호 / 2018년 8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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