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바라밀은 일상에서 지니고 수행하는 표준”
“육바라밀은 일상에서 지니고 수행하는 표준”
  • 허만항 번역가
  • 승인 2018.07.30 13:52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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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곡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⑩

보시 행하려면 기꺼이 내려놓아야
불법도 세간법도 인내로 원만성취
지혜는 진실과 거짓 분별하는 힘
육바라밀 닦으면 반드시 발원실현
정공 스님은 염불에서 가장 금기해야 할 것은 뒤섞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뒤섞으면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공 스님은 염불에서 가장 금기해야 할 것은 뒤섞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뒤섞으면 성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늘 보시와 지계, 인욕과 정진, 선정과 지혜의 육바라밀을 수행하여(常行布施及戒忍 精進定慧六波羅)”

이 두 구는 곧 육바라밀을 말합니다. 앞의 다섯 가지는 사(事) 차원의 수행으로 이것에 따라 수행하면 지혜가 저절로 개발됩니다. 지혜가 현전하면 일상생활에서 표현됩니다. 이 여섯 가지는 보살이 일상생활에서 지니고 수행하는 표준입니다.

첫째 보시(布施)를 행하려면 기꺼이 버리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청정한 마음을 물들게 하는 것 모두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세상의 명성과 이익·다섯 가지 욕심과 여섯 가지 경계·탐진치와 교만은 모두 생사번뇌의 근본원인입니다. 따라서 남김없이 버려야 합니다.

생활이 너무나 괴롭고 큰 어려움을 겪으면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 인과를 몰라 수많은 장애가 생깁니다. 그래서 언제나 대승경전을 독송하여 경문에서 가르치는 뜻을 체득하여야 합니다. 이치를 분명히 이해하고 인과를 똑똑히 이해하면 저절로 기꺼이 버리고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생활에 곤란이 생길까 두려워서입니다. 예를 들면 재물을 포기하면 힘든 나날을 보낼 것이라 여깁니다. 이는 망상이고 착각입니다. 재물을 버릴수록 더 자재하고 더 풍요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또한 법보시를 하면 총명하고 지혜가 생깁니다. 고난 받는 이웃들을 도우면 건장과 장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살은 보시를 수행의 제일 강령으로 삼을 만큼 대단히 중시합니다.

다음은 ‘계’로 지계(持戒)입니다. 지계의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합니다. 광의로 말하면 바로 수법(守法)입니다. 준수하여야 하는 것은 오계·십계·비구계·보살계 등의 계율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의 가르침을 모두 준수하여야 합니다. 그밖에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헌법과 법률,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관습과 도덕 등을 준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안정과 번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지계의 뜻이 있습니다.

셋째는 ‘인욕(忍辱)’하여야 합니다. 일을 하거나 사람을 대하거나 사물을 접할 때 모두 인내하여야 합니다. 불법을 수학할 때는 이보다 더 큰 인내가 필요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에서 “일체법이 무아임을 알고, 인(忍)을 얻어 성취한다.” 하셨습니다. 불법이든 세간법이든 모두 인내심이 있어야 원만한 성취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넷째는 정진(精進)입니다. 진(進)은 진보를 뜻합니다. 이 시대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은 진보를 추구하여 나날이 달라집니다. 정(精)은 순수하여 뒤섞지 않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정진은 뒤섞지 않고 산란하지 않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세간법에 적용해도 정확합니다. 학교에서는 자신의 전공에 정진하면 쉽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어떤 직업이든 자신의 본업에 정진하면 쉽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불법도 예외가 아닙니다. 불법에는 법문이 무량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결코 모든 법문을 배우라고 하지 않고 일문에 깊이 들라고 하셨습니다. 일문에 정진하여야 일체법문을 통달할 수 있습니다. 경전도 한 경전을 통달하면 일체경을 통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이해하면 학불(學佛)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 경전에 진실로 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염불에서 가장 금기해야 할 것은 뒤섞는 것입니다. 뒤섞으면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세간법은 물론이고 불법에서도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려면 매일 기도일과로 단지 ‘무량수경’ 혹은 ‘아미타경’을 염송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수(專修)입니다. 이것 이외에 여전히 ‘금강경’이나 ‘약사경’ 등을 염송하면 잡수(雜修)로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예배참회의 경우 정토종에서는 하련거 거사가 편집한 ‘정수첩요(淨修捷要)’가 가장 간단한 참회법입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어떤 기도를 하든지 아미타부처님께 예배하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래서 염불을 진정한 정진이라고 합니다.

정진한 후에는 정(定)이 있습니다. 이를 통상 선정이라 합니다. 육바라밀에서 선정은 마음에 주재함이 있어 바깥경계에 유혹되지 않는 것을 정(定)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어떤 상품이든 아무리 신기하여도 마음에 흔들리지 않으면 정을 얻은 경지입니다. 마찬가지로 염불행자는 수많은 법문을 들고 보아도 여전히 아미타부처님을 염하여 움직이지 않고 보지 않습니다. 선사가 오면 좌선을 배우고 밀교 상사가 오면 다라니를 염한다면 정(定)은 없습니다.

‘혜(慧)’는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거짓이 많아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불법에서도 삿되고 해로운 견해가 많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로써 이 여섯 가지 보살행이 완전히 우리 일상생활의 가르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접하며 일을 할 때 표준에 맞도록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육바라밀이라 합니다. 바라(波羅)는 범어로 원만이란 뜻입니다. 착실히 육바라밀을 수학하면 반드시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만히 성취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제도 받지 못한 유정은 제도 받게 하옵고 이미 제도 받은 자 성불하도록 하옵소서(未度有情令得度 已度之者使成佛).”

특별히 이 두 구는 우리에게 큰 일깨움을 줍니다. 우리 주위에는 가족과 친척, 친구와 동창 등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불법을 만나지 못해 제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학불을 하여 불법의 이익을 알면 그들에게 불법을 소개해주어야 합니다. 이는 불자의 책임이자 의무입니다.

모르는 낯선 사람일지라도 제도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느 곳에 가든지 불법 책자 몇 권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책을 보시할 수 있습니다. 만약 책이 없다면 불법을 인쇄한 카드를 많이 가지고 다녀도 좋습니다. 언제나 이런 생각이 있으면 도처에서 불법을 전해줄 수 있습니다.

이미 제도 받은 사람이거나 불법에 대해 매우 깊은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토법문을 권해야 합니다. 단지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기만 하면 이번 생에 성불할 수 있습니다. 정토법문을 소개하여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에게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가 있으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업장이 사라져서 그가 뉘우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0호 / 2018년 8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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