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빠 최제 롭상 도르제 린포체
샤르빠 최제 롭상 도르제 린포체
  • 정리=주영미 기자
  • 승인 2018.07.30 15:21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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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락 버리고 윤회 반드시 끊겠다는 출리심이 수행의 시작”

윤회에 탐착하는 마음 없고
해탈 절실할 때 출리심 일어

출리심과 함께 보리심 중요
그래야 완전한 행복이 가능

윤회 뿌리 자르기 위해서는
반야의 지혜가 반드시 필요

인과와 무아가 다르지 않아
두 개가 같음 알 때 깨달음

공성과 연기 이치 관통하면
윤회 소용돌이 벗을 수 있어
샤르빠 최제 롭상 도르제 린포체는 “바른 견해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닦아야 한다”며 “가장 쉬운 견해부터 미세한 견해까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샤르빠 최제 롭상 도르제 린포체는 “바른 견해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닦아야 한다”며 “가장 쉬운 견해부터 미세한 견해까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티베트 쫑카파 대사의 게송 중에 ‘도의 세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존귀하고 거룩하신 모든 스승님께 귀의합니다”라는 첫 게송은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스승에 대한 예경입니다. 다음은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의 핵심, 보살님들께서 찬탄하신 도, 행운아들이 들어가는 해탈의 문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설하겠나이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반야이고, 보살들이 찬탄한 도는 보리심과 대자비심입니다. ‘행운아들이 들어가는 해탈의 문’은 출리심(出離心)으로 윤회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다음 게송은 “윤회의 안락에 집착하지 않고, 유가구족의 이 좋은 몸 뜻있게 하기 위해 정진하여, 승리자를 기쁘게 하는 도, 확고히 믿는 행운아들은 청정한 마음으로 들으소서”입니다. 윤회에 집착하지 않는 바른 마음으로, 사람 몸으로 태어남을 소중히 여기고, 승리자 부처님을 따르는 불제자들이 청정한 마음으로 도의 세 가지 핵심을 잘 들어달라고 청을 올리는 것입니다. 여기서 출리심이 중요합니다. 성불하려면 출리심·보리심(菩提心)·공성(空性)을 갖춰야 합니다. 윤회에 탐착하면 중생은 속박됩니다. 윤회의 달콤한 행복에 집착하면 윤회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해탈을 원한다면 반드시 출리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출리심을 일으켜야 할까요. 게송을 들어봅시다. “유가구족의 몸 얻기 어려움과 삶의 무상함을 사유하고, 마음에 깊이 새겨 금생에 대한 집착을 끊고, 거짓 없는 업보와 윤회의 고통들을 거듭 사유하면, 내생에 대한 집착 끊을 수 있네.”

이생과 내생에 대해 집착을 버리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출리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사람 몸을 받기 어렵지만 결국 이 몸 또한 죽음으로 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또 선업을 쌓으면 행복을 얻고 악업을 쌓으면 불행을 겪는 것이 인과응보의 의미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도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악업을 소멸하고 선업을 쌓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유해 닦음으로, 윤회에 탐착하는 마음 한 찰나도 일어나지 않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해탈을 구하는 마음 일어나면, 그때 출리심이 생겨난 것이네.” 이 게송은 출리심이 일어나는 경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고통의 바다, 윤회 세계에서 벗어나야 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나야 합니다.

그런데 윤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킨다고 해서 무조건 해탈하는 것은 아닙니다. 출리심과 더불어 보리심(菩提心)이 있어야 합니다. 보리심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출리심 그 또한 참된 보리심의 토대 없이는 위없는 깨달음이자 완전한 행복의 원인이 될 수 없기에 지혜로운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완전한 행복은 부처의 경지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출리심도 일으키고 보리심도 일으켜야 합니다. 보리심은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라고만 번역이 되는데 부족합니다. 보리심은 ‘일체중생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일체중생이 나의 부모·형제·자식입니다. 일체중생을 위해 성불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보리심입니다.
그렇다면 일체중생들의 상황은 어떠할까요. “거센 네 강의 급류에 휩쓸려, 벗어나기 힘든 강력한 업의 속박에 묶이고, 아상의 쇠창살에 갇힌 채 칠흑 같은 무지의 어둠에 둘러싸였네.” “끝없는 윤회에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세 가지 고통에 쉼 없이 짓눌리는 이런 상태에 빠진, 어머니였던 중생들의 모습을 사유하여, 보리심을 일으켜야 하네.”

거센 네 가지 강은 집착, 분노 등 심리현상을 비유한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업장이 두껍다”라는 말은 밧줄에 묶인 것과 같이 업에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중 나에 대한 집착·아상·아집은 쇠창살과 같은 상황입니다. 또 무지의 어둠은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캄캄함 속에 쌓여 반복해서 태어나며 고통에 짓눌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체중생의 모습을 생각하며 대자비, 보리심의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다음 게송은 “공성을 깨닫는 지혜 갖추지 못하면, 출리심과 보리심을 잘 닦더라도 윤회의 뿌리 자를 수 없기에, 연기법을 깨닫기 위해 정진하소서”입니다. 반야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리심으로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보리심이 있어야 성불할 수 있습니다. 또 출리심과 보리심이 있어도 반야 즉 지혜가 없으면 윤회의 뿌리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성을 깨닫는 바른 지혜, 연기법은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윤회하거나 해탈한 모든 존재들이, 인과가 절대 거짓 아님을 보고 아상으로 지은 모든 것 멸할 때, 부처님 기뻐하시는 도에 들어간 것이네.”

존재들은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과는 절대 거짓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중생들이 연기법과 공성에 대해 바른 견해를 가질 때 부처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연기법과 공성은 단번에 깨닫기 힘들기 때문에 다음 게송에 나옵니다. “거짓 없이 나타나는 연기법과 언설 벗어난 공성에 대한 이해, 둘을 모순으로 인식함이 남아있는 한 아직도 능인의 뜻 깨달은 것 아니네.”

인과(因果)가 있다고 하고, 무아(無我)를 말한다고 해서 두 가지를 달리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는 공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인과와 무자성은 표현만 다를 뿐 하나입니다.

“언젠가 이 둘의 뜻을 관통하여 연기법 참되게 보는 그 순간, 존재에 대한 아상 모두 사라지고 공성의 사유가 완성된다네.”

연기법이라고 할 때 결과는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원인이 있으므로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독립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무자성(無自性)·무아·공성(空性)이라고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단견에 빠지면 공성에 대해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공성을 깨닫는 것이 곧 연기법을 참되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심경’의 가르침입니다.

“또한 연기법으로 상견을 없애고 공성으로 단견을 없애, 공성과 연기의 이치 깨달으면 극단의 견해에 빠지지 않게 되네.”

이는 ‘자성이 없다’는 중관학파의 견해입니다. ‘공하다’라고 할 때 사람마다 이해가 다릅니다. 부처님은 대기설법을 하셨고 제자들도 유부·경량부·유식·중관학파 이렇게 네 가지 학파가 있습니다. 중관학파에서도 자성이 있다고 보는 학파와 자성이 없다고 보는 학파로 나뉩니다. 이 게송은 바로 자성이 없다는 중관학파의 견해입니다. 인과는 서로서로 의지하기 때문에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연기법이라고 하면 절대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의지해서 존재하고, 공성이라고 하면 ‘없다’라는 말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없다’ ‘의지해서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공성을 깨닫지 못하면 윤회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반야의 공성을 어떻게 깨닫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공성은 불교의 다양한 견해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지막 게송입니다. “이러한 도의 세 가지 핵심을 바르게 깨닫고 오지에 머물며, 힘찬 정진으로 궁극의 경지 속히 이루소서. 아들이시여!”

오지에 머문다는 것은 토굴 같은 무문관(無門關) 수행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핵심에 대한 확신을 갖고 수행에 들어갈 때 부처님의 경지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닦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사대학파의 견해가 있습니다. 1층에서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갈 때 1층에서 2층, 3층을 거쳐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듯이 불교의 견해도 순서와 차제(次第)가 있습니다. 가장 쉬운 견해부터 미세한 견해까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초기불교부터 대승불교까지 모두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른 견해를 갖고 기도하고 공부해야 성불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7월14일 부산 관음사에서 봉행된 우란분절 초청 법회에서 샤르빠 최제 롭상 도르제 린포체가 설한 ‘도의 세 가지 핵심’ 주제의 법문을 요약 게재한 내용입니다.

 

[1450호 / 2018년 8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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