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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백양사 주지 명본 스님

신행·문화 두 축 굳건히 세워 도심과 맞닿은 최고 산사로 일궈갈 터!

5형제 중 4명 출가
큰 형님 사찰서 공양
밥값으로 매일 108배

동국대 인도철학과 입학
삭발염의 해야 장학금
법산 스님 은사로 단행

‘빈자일등’도 잊혀지는
신앙심 약화 현실 인정
사찰이 변해야 불교 살아

신도위한 전용공간 전무
문화센터가 확실한 대안
포교지평 확대도 가능

“송곳 하나 꽂기 어려운 마음을 좀 넓혀 보자”는 명본 스님은 “울산에 살면 적어도 태화강 폭 만큼의 마음을 열자”고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자비심이 행복의 숲을 풍성하게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남수연 기자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울산군 편에 이 고장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이르는 ‘팔영(八詠)’이 실려 있다. 제목만 적혀 있을 뿐 시는 없어 조선 당시의 울산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8영 중 하나가 산사송풍(山寺松風)인데 어느 절의 솔바람일까? 한 여름 솔밭에서 인 그 소리 청량할 텐데.

먼 옛날부터 울산 사람들이 손꼽은 팔경(八景)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법하다. ‘세종실록지리지’와는 결이 다른 풍경을 택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백양사(白楊寺)의 새벽 종소리(白楊曉鐘)다. 소리를 보라! 낯설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절로 걸음 하여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어 보라는 뜻일 터다. 조선시대 울산부사를 지낸 심원열(沈遠悅) 또한 시문집 ‘학음산고(鶴陰散稿)’에 울산팔경을 기록하며 백양사의 저녁 종소리(楊寺晩鐘)를 꼽았다. 이쯤 되면 산사송풍을 백양사 솔바람소리라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아쉽게도 ‘세종실록지리지’ 속 백양사를 함월산(含月山)이 올곧이 품을 수 있었던 건 1970년 이전까지다. 산업화·대규모 택지조성으로 함월산은 생채기를 입었고, 상처의 깊이만큼 고즈넉한 산사 정취도 바래져갔다. 10여년 전, 급기야 울산 혁신도시 확장선이 백양사 바로 앞 500m 지점으로 결정됐다.

현재 백양사는 함월산 품에 안긴 산사(山寺)이자 10개의 공기업과 인구 3만여 명이 거주하는 곳 한복판에 앉은 도심사찰이다. 전통의 산중사찰·현대의 도심사찰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백양사의 미래가 달라질 터인데, 그건 전적으로 주지의 혜안에 달려있다. 2015년, 백양사 새 주지에 명본 스님이 임명됐다.

명본 스님은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큰 형님(금강)과 셋째 형님(붓따팔라)은 일찌감치 산문으로 들어섰다. 초등학교 시절, 금강 스님이 머물고 있던 부산 대법륜사 아래에 방 하나 얻어 막내와 살았다. 학비를 벌어야 했던 형제는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신문을 돌렸다. 공양은 대법륜사에서 할 수 있었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등교 전, 하교 후에는 반드시 절에 들어 부처님전에 108배를 올려야만 했다. 15살 위의 금강 스님 명(命)이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발각되면 법당에서 500배를 해야 했으니 명본 스님의 행자 생활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대학입시를 치른 직후 붓따팔라 스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동국대 불교대학에 입학하면 장학금 준다고 하네.”

장학금!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합격하고 붓따팔라 스님을 만났다.

“삭발염의 해야 장학금 준다고 하네.”

그렇군!

1987년, 법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얼마 후 108배 도반이었던 막내(법성)가 삭발 했다. 둘째 형님만이 출가를 자제하고 불교용품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장성한 맏아들이 수 년 전 산문을 열었다. 불연(佛緣)이 아주 깊은 집안이다.

함월산에 위치한 백양사 전경. 백양사 제공 

전통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불교 역할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정평이 난 명본 스님에게 백양사의 미래를 들어보려 걸음 했다. 산중사찰과 도심사찰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산중사찰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기도·의식·선(禪)의 깊이가 더해질 것이고, 도심사찰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포교·문화 색채가 더해질 것이다.

“도심과 맞닿은 산사로 뿌리 내리려 합니다.”

도심사찰의 기능을 확대하면서도 산사의 고유 품격은 지켜가겠다는 뜻이다.

“그 뿌리 깊게 내리려면 새로운 공간이 필요합니다.”

전임 주지였던 목산 스님은 16년에 걸친 중창 불사를 통해 백양사를 울산의 대표도량으로 세워놓았다. 명본 스님이 필요하다는 공간은 도량 내의 새로운 전각을 뜻하는 건 아닐 터다.

교양대학 설립 붐이 일기 시작한 때가 ‘1994 종단개혁’과 함께 포교원이 별원으로 독립한 직후부터임을 상기한 명본 스님은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2018년 현재의 불교현실을 짚었다.

“전국의 유수 사찰이 불교교양대학 설립에 박차를 가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불자 만들기’와 ‘똑똑한 불자 육성’입니다. 교리에 밝은 불자가 신심도 높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겁니다. 그 동안 엄청난 졸업생이 배출됐는데 어떤 변화가 있었을 지요. 사찰 참배·법회 참여도가 높아졌을까요? 기본 교리에 밝아진 만큼 경전을 더 가까이 하고 있을까요? 저와 담소를 나눴던 유수 사찰의 주지스님들은 이구동성으로 눈에 띌 정도의 큰 변화는 없었다고 토로 합니다. 제 눈에도 그렇게 보입니다.”

한국갤럽이 편찬한 ‘한국인의 종교’가 명본 스님의 분석을 방증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절에 간다’는 문항에서 불교는 1984년 10%, 2004년 4%, 2016년 6%를 보였다. 1984년에 비해 오히려 줄었다. 반면 기독교(교회)는 62%, 71%, 80%였다. 경전을 1주일에 한 번 이상 읽는다는 문항에서 불교는 1984년 11%, 2004년 8%, 2016년 11%였다. 변화가 없다. 반면 개신교(성경)는 45%, 49%, 56%로 늘었다.

“불교교양대에 입학한 분들은 교리, 불교사, 불교사상, 불교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분들입니다. 그 그룹을 사찰이 온전히 받아 신수봉행의 길로 나서도록 인도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이 점을 간과했습니다. 일례로 신도들을 위한 공간을 각 사찰에서 얼마나 확보하고 있습니까? 교양대학에서 들은 교리를 주제로 법우들끼리 법담을 나눠보려 해도 마주 앉을 곳이 없습니다. 입학과 함께 갓 품었던 푸른 신앙심마저 졸업과 함께 흩어지는 겁니다.”

백양사 불교교양대학 바로 옆 향전을 불자들의 쉼터로 내어 준 뜻을 알겠다.

초파일 연등축제 행렬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해를 거듭할수록 불자들의 신앙심이 엷어지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다고 한다. 연등축제에서 전통 연등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팔각 등은 2명이 합심해서 1시간만 투자해도 최소 50개는 만듭니다. 전통 연등은 5명이 합심해서 5시간 투자해야 50개 제작합니다. 특정 법회 날 빼고는 절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신도가 없으니 전통연등을 만들 수 없는 겁니다. 팔각 등 제작 여건도 안 되다 보니 아예 비닐 등으로 대체하는 추세입니다. 대형 장엄 등은 모두 전문가가 제작하고 있으니 신도와는 무관한 일이 되었습니다. 축제 두 세 시간 전 절에 와서 업체를 통해 구입한 비닐 등 들고 나갔다가 행렬 끝난 후 절에 내려놓고 가면 끝입니다. 이런 식이면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교리책에만 있을 뿐 우리 마음에서는 사라진 겁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분홍빛 색종이를 하나하나 비벼 만든 연잎을 풀로 붙여가며 피워낸 연등, 다소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만든 대형 장엄 등을 들고 나가야 불자로서의 신심과 자부심을 가질 게 아닙니까?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사찰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공예 강좌를 열면 됩니다. 손 맵시 좋은 신도들이 배우고 익히면 대형 장엄 등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백양사 불교교양대학.

간화선 일변도의 포교 종책도 현 시점에서 한 번 점검해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목숨 걸어야 소식 있다”는 간화선을 대중화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선지식과 제자 간의 밀도 높은 점검과 지도편달이 있어야만 하는 간화선을 현대인들이 선뜻 택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간화선 외 또 하나의 방책으로 명상에 주목할 때라고 한다.

“한국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3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했습니다. 대략 하루 40명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자살률 1위를 연이어 기록하던 2009년에 나온 보도를 보면 스트레스 질환 실진료 환자수가 4년 동안 15%씩 증가했고, 10대 청소년 경우 ‘강박장애 질환’ 실진료 환자수가 3년간 58% 증가했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깨달음’이 아니었습니다. 잠깐만이라도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이 문을 두드린 곳은 산문이 아니라 명상센터였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본격적으로 포용하기 시작한 건 템플스테이가 가동된 때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명본 스님은 마음 챙김 명상을 뼈대로 쓴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가 전 세계를 강타한 연유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저자인 차드 멍 탄(Chade Meng Tan)이 구글 본사의 엔지니어였다는 특별함 이력 때문에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행복의 바다에 흠뻑 젖는데 필요한 시간은 2분이라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2분! 저자가 실시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글 직원들은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만족, 자신, 창의, 행복 등의 언어들을 쏟아냈습니다. 현대인들이 원하는 건 ‘행복감’입니다. 그들에게 ‘깨달음’은 그 다음 단계에서 논의할 고차원적인 개념입니다. 간화선과 명상, 간화선과 위빠사나를 비교연구 한 논문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 자료를 토대로 한국 사찰에서 실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명본 스님이 필요하다는 공간은 신도들을 위한 특별 공간이다. 교육, 문화, 수행을 한 곳에서 입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공간. 아울러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할 수 있는 공간. 템플스테이 보다는 진일보 한 공간. 전통문화센터다!

산신각으로 향하는 108계단.
산신각으로 향하는 108계단.

백양사는 1만8000㎡의 절터를 포함해 약 7만8000㎡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백양사 주변의 야지로 보이는 건 거의 다 백양사 땅이라고 보면 된다. 길 바로 옆이나 산 속 깊은 곳 어디에라도 전통문화센터를 지을 수 있는 장점을 안고 있는 셈이다. 또한 백양사서 울산광역시청까지는 5km 거리이고 승용차로 15분이면 닿는다. 접근성이 용이하니 프로그램만 잘 활용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명본 스님은 그 계획을 실현 시키려 백방으로 뛰고 있다.

“교육, 문화, 수행 등의 어떤 루트를 통해 걸음 했든, 한 번 절에 들어 선 불자가 평생 동안 절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 법문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현 불교계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변화를 도모해야 할 당체는 신도가 아니라 사찰입니다.”

백양사만의 청사진이 아니다. 조계종이 그려가야 할 청사진이기도 하다.

명본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백양사 불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로 전하고 있을까?

“송곳 하나 꽂기 어려운 마음을 좀 넓혀 보자고 합니다. 절에서 한 걸음 나아가면 개울입니다. 개울 넓이만큼의 마음이라도 열어 보자고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태화강입니다. 강 폭 만큼의 마음을 내어 보자고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바다입니다. 내 마음 내가 만들고 넓히는 것인데 태평양 마음인들 못 내겠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자비심이 행복의 숲을 풍성하게 키워갈 것이라는 뜻일 터다. 대웅전 뒤편의 숲에서 인 솔바람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이 도량에 전통문화센터가 세워지면 백양사는 또 한 번 비상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려 보자! 함월산이 품은 백양사 아닌가!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명본 스님
· 1987 법산 스님 은사로 출가
· 청하 스님 계사로 사미계
· 1993 일타 스님 계사로 구족계
· 통도사 승가대학·동국대 대학원 졸업
· 2009 조계사 교무국장
· 2012 통도사 포교국장
· 2014 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
· 2015 울산 백양사 주지 임명

 

[1450호 / 2018년 8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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