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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한강-동호

기자명 임연숙

깎고 파낸 우리네 일상의 기록

수묵 기반한 목판화 작가 김억
여러 장 겹쳐 만드는 다색판화
노력·수고 많이 들어가는 과정
늘 함께해 익숙한 것 기록으로

김억 作 ‘한강-동호’, 한지에 다색목판, 31×130cm, 2012년.
김억 作 ‘한강-동호’, 한지에 다색목판, 31×130cm, 2012년.

만나는 사람마다 더위에 어찌 지내는지 안부부터 묻게 되는 날씨다. 체질적으로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차라리 낫다할 정도로 더운 날은 맥을 못 추는지라 평소 여름에 어느 지역이 38도니 39도니 하면 거기가면 나는 죽겠구나 싶었는데, 서울이 긴 기간 동안 그 정도 온도이니 정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죽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그냥저냥 지내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더위도 지나가고 있다. 찜통더위 속에도 이른 아침의 바람에서 희망을 찾아본다.

별다른 일없이 사는 것 같아도, 크게 내가 스스로 어떤 일을 벌이지 않았는데도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고 해결하고 헤쳐 나가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처지를 이해하게 되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잘잘못을 따지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아니, 그러라고 크고 작은 숙제가 생기는가 보다.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살라고 말이다.

김억 작가는 원래 대학에서 한국화를 공부하고 수묵 작업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참 후에 작가는 목판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전국의 산하를 목판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소개하는 한강이라는 작품은 얼핏 보면 수묵화로 보기 쉽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색 목판화 작업이다.

나무판을 칼로 파내는 작업이다. 여백부분이 깎아낸 부분이다. 흰색, 검은색, 회색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이 판화는 말하자면 두 개의 판을 파서 잘 맞추어 찍어낸 것이다. 하나의 판에는 검은색이 찍힐 수 있는 부분을 남기고 파 낸 것이고, 회색 판은 회색이 찍히는 부분만을 남기고 파낸 것이다. 흰색이 많은 수록 작가는 나무판을 수없이 많은 칼질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가의 노력과 수고가 그만큼 많이 들어가는 과정을 거친 작품이다.

작가는 국토의 중심을 누비고 지키고 있는 한강을 오늘의 시각으로 기록하였다.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면면히 지켜보면서 민족의 얼과 넋을 간직한 한강을 주제로 성찰의 화두를 던진다. 한강을 가로지르며 자전거 타는 모습에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진다. 아무리 더운 날도 강가에 가면 강물을 바라보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강바람이 느껴져 좀 시원한 감이 있다. 가까이에 이렇게 큰 강이 있고 이 강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더위를 쫓고, 일상에 찌든 생각을 씻고, 힐링하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한강이 서울 생활을 조금이나마 풍요롭게 해주는 듯싶다.

동호대교를 배경으로 표현한 한강변의 풍경과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시생활의 중심 주거인 아파트 단지의 풍경까지도 산자락의 능선처럼 느껴진다. 압축개발과 산업화도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인 것처럼 작품 속에서 담담하게 과장되지 않게 표현되어 있다. 최근엔 아예 한강을 중심으로 한 축제의 장도 많이 있다. 한강변으로 수영장도 만들어지고 한밤에 야시장도 열린다. 생활 속에서 다양한 크고 작은 축제를 통해 도시의 삶을 그나마 여유롭게 즐기며 살 수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더위에 익숙해 져서, 물 흘러가듯 생각하다 보면 가을이 와 있지 않을까.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51호 / 2018년 8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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