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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담하게 훔쳐간 16나한상

기자명 이숙희

불자 가장해 방범시스템 차단 후 나한상 절취

영광 불갑사 16나한상 중 8구
불자로 가장한 문화재절도범이
전날 열감지기·증폭송신기 절단
문고리 못 뽑아놓는 등 조치 후
1999년 4월15일 밤 침입 절도

고성 옥천사·전주 서고사 나한
30년 만에 되찾아 원위치 봉안
도난·도굴 등 불법취득 문화재
선의취득 인정 안돼 매매 불가

옥천사 16나한상 중 3존자, 14존자, 15존자, 16존자, 조선후기. ‘우리들의 성자 무생 응진 아라한의 귀향과 염원’(옥천사성보박물관, 2017).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 불갑사 팔상전(八相殿)에 안치된 목조 16나한상 중 8구가 1999년 4월15일에 도난당하였다. 문화재 전문절도범들은 나한상을 훔쳐가기 하루 전인 14일 낮에 불교신자로 가장하여 불갑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무인 방범시스템의 열감지기와 증폭송신기의 선을 절단하고 문고리를 고정시켜 놓은 못을 뽑아놓는 등 사전에 필요한 조치를 한 후 다음 날 저녁에 침입하여 불상을 절취해 갔다. 팔상전 출입문의 문창살에는 끌이나 드릴로 파손한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고 창호지가 뚫려 있었다. 불갑사 16나한상은 현재 8구만 남아 있는데 최근에 개채되어 원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16나한이란 부처가 열반한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16명의 제자를 말한다. 즉, 제1 빈도라발라타사(賓度羅跋囉惰闍), 제2 가락가벌차(迦諾迦伐蹉), 제3 가낙가발리타사(迦諾迦跋釐惰闍), 제4 소빈타(蘇頻陀), 제5 낙거라(諾距羅), 제6 발타라(跋陀羅), 제7 가리가(迦理迦), 제8 벌사라불다라(伐闍羅弗多羅), 제9 술박가(戌博迦), 제10 반탁가(半託迦), 제11 라호라(羅怙羅), 제12 나가서나(那伽犀那), 제13 인게타(因揭陀), 제14 벌나파사(伐那婆斯), 제15 아씨다(阿氏多), 제16 주다반탁가(注茶半託迦)를 가리킨다. 특히 제 1존자인 빈도라발라타사는 16존자 중 가장 중요한 인물로 빈두로(賓頭盧)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오래전부터 단독상으로 신앙되었다.

‘법주기’에 의하면, 석가가 16인의 아라한에게 ‘부처가 입멸한 후에도 영원히 세상에 머무르면서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제도하라’는 사명을 부여하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16나한은 권속들과 함께 신통력을 사용하여 스스로 수명을 늘리면서 마땅히 정법이 머물도록 수호하며 중생들에게 큰 과보를 베풀었다. 또한 16나한은 무한한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삼계(三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삼장(三藏)을 외워 지니고 있어 경전 등에도 두루 통달한 자들이다.

불갑사 16나한상 중 남아 있는 8구에서 모두 복장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그 내용에 의하면, 16나한상은 1706년(숙종 32)에 승려 옥잠의 발원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초변을 비롯하여 영선, 각초, 석준, 정혜, 서행, 징성 등 11명의 조각승이 참여하였다. 특히 초변은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했던 색난의 제자로 1684년에 전라남도 강진 정수사 나한전과 1701년 해남 대둔사 응진전의 16나한상을 조성하였던 조각승이다.

불갑사 16나한상은 모두 정면을 향한 채 무릎 위에 동물을 안고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으로 어린아이 같은 신체비례이며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어 천진스러운 표정이다. 몸에는 고색을 띠고 채색이 화려한 가사와 장삼을 걸치고 있는데 둥근 깃이 있는 내의를 입은 상이 있는가 하면 내의를 입지 않은 상도 있다. 나한상들은 바위 위에 결가부좌 또는 반가좌로 앉아 있거나 한쪽 다리를 늘어뜨린 유희좌, 한쪽 다리를 세운 윤왕좌, 두 다리를 모두 내리고 있는 의좌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 손으로 안고 있는 호랑이와 용을 비롯한 상서로운 서수(瑞獸)들도 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호랑이는 중국 토지의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민간신앙이 불교에 수용되었음을 의미하며 용은 손에 발우를 들고 가뭄이 있을 때 신통력으로 비를 다스리는 신룡을 항복시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갑사 나한상들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전라북도 완주 송광사와 전라남도 강진 정수사, 경상남도 고성 옥천사의 목조 16나한상과 매우 닮아 있다.
 

전주 서고사 나한상, 1695년, 높이 50.3~54.3㎝. ‘다시 찾은 성보’(대한불교조계종, 경찰청, 문화재청, 2014).

최근에 되찾은 나한상들이 있다. 1988년 1월30일 도난된 경상남도 고성군 옥천사 나한상 7구 중 2구와 2004년 7월경에 도난된 전라북도 전주시 서고사(西固寺) 나한상 4구 및 복장물이다. 2014년 6월2일 서울 관훈동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마이아트 옥션에 경매물품으로 나왔던 것이다. 도난 된 지 30년 만에 조계종과 문화재청, 경찰청이 협력하여 서울의 한 사립박물관장으로부터 나한상들을 회수하였다. 박물관 측은 도난문화재인줄 모르고 고미술상로부터 합법적으로 구입했다며 선의취득을 주장하여 사찰 측과 소유권 문제로 한때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 옥천사와 서고사 나한상은 도난문화재로 확인되어 압수된 후 원 봉안처인 사찰로 각각 돌아갔다.

고성 옥천사 나한상은 2014년 제3존자와 14존자 2구가 회수되었고 2016년 나머지 5구 중 미국 경매에 나왔던 제15존자와 16존자 2구도 소장가에 의해 반환되었다.(사진 1) 되찾은 옥천사 나한상 4구는 천진스러운 얼굴과 다양한 자세, 고색창연한 채색 등이 특징이다. 둥근 깃이 있는 내의를 입고 그 위에 화려한 가사를 걸친 착의법이나 두 손으로 서수의 앞발을 잡고 세우고 있는 모습 등은 18세기 초의 불갑사 나한상과 유사하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이다. 특히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젖히거나 돌려 정면을 쳐다보는 서수를 표현한 것은 동적이면서 해학적이라 가히 조선후기 나한상을 대표할만하다.

회수된 서고사 나한상은 제3존자, 제5존자, 제14존자, 제16존자상이다.(사진 2) 이 4구의 나한상에서 모두 발견된 복장 발원문은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즉 1695년(조선 숙종 21) 5월23일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사는 문만영이 시주하고 수화승 성심을 비롯하여 체원, 민성, 성인, 진열 등의 조각승이 가섭·아난존자와 16나한상을 조성한 것이다. 원래는 전라북도 부안면 선운리 백련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하였다고 하나 어떤 연유로 서고사에 남아 있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서고사 나한상 4구 역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거나 정면을 보면서 바위 형태의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높이 50cm 정도의 작은 나한상이지만 얼굴과 자태에서 천진스러운 조형감이 엿보인다. 근래에 두껍게 개채되어 따뜻한 나무의 질감이나 예스러운 색감을 느낄 수 없다.

고성 옥천사 나한상이나 전주 서고사 나한상과 같이 지정되지 않은 도난문화재는 10여년 전만 해도 장물인 줄 모르고 구입한 경우에는 원소유주(사찰)가 소유권을 내세울 수 없었으나 지금은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07년 7월27일 ‘문화재보호법’이 일부 개정되어 도난문화재에 대한 선의의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 조항까지 새로 제정되었다. 도난문화재를 처분한 자나 구입한 자 모두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법안이 강화된 것이다. 이제는 도난이나 도굴 등 불법으로 취득한 문화재를 더 이상 팔지도 사지도 못하게 되어 문화재 범죄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51호 / 2018년 8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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