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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 스님과 허정 스님 차이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8.20 11:41
  • 수정 2018.08.20 13:45
  • 호수 1452
  • 댓글 14

수덕사 문중의 동갑내기 스님
설정 스님 관련해 판이한 입장
때때로 감싸 안는 것이 ‘예의’

경허·만공선사 선풍을 잇는 덕숭총림 방장을 역임한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사면초가에 내몰리면서 눈길을 끄는 두 명의 스님이 있다. 전 옥천암 주지 정범 스님과 전 불학연구소장 허정 스님이다. 법랍은 정범 스님이 여러 해 많지만 두 스님 모두 1969년생으로 덕숭총림 수덕사가 출가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스님에게 설정 스님은 비록 은사는 아니지만 문중의 큰 어른이다. 그렇지만 이들 스님이 지금 설정 스님을 바라보는 관점은 물과 기름만큼이나 확연히 다르다. 종회의원 정범 스님은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에 선출되면서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해왔다. 같은 문중이기에 오히려 총무원장의 행보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여긴 것 같다. 한동안 미국을 오가며 법적 분쟁이 있는 한국사찰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 왔다.

정범 스님이 불교계에 다시 모습들 드러낸 것은 최근이다. 설정 스님의 친자의혹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면서 종단 안팎에서 퇴진 요구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중앙종회가 설정 스님 불신임결의를 안건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정범 스님은 종회의원들에게 호소문을 돌리며 안건 철회를 요청했다. 박대를 무릅쓰고 비구·비구니 종회의원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간청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앙종회 투표 결과 설정 스님의 불신임이 가결됐다. 설정 스님이 벼랑 끝에 몰린 것이다. 모두들 설정 스님을 비난하고 기피하는 가운데 정범 스님은 8월17일 종회의원을 내려놓고 총무원장 사서실장을 선택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백양사 승풍실추 사건 때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홀로 비를 맞아가며 눈물로 참회의 절을 올렸던 정범 스님. 어쩌면 정범 스님은 이번에도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하려는 항해사의 심정으로 사서실장 임명장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저기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오롯이 정범 스님의 몫이겠지만 백척간두에 선 설정 스님으로서는 정범 스님이 참으로 고마운 존재일 듯싶다.

허정 스님은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 시절 불학연구소장과 천장암 주지를 지냈다. 인도에서 불교를 공부한 스님은 종단 안팎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했다. 특히 총무원장 직선제를 적극 지지했던 스님은 각종 기고를 통해 직선제의 당위성을 피력했다. 총무원장 직선특위 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다른 이에게 모욕감을 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해임되는 우여곡절도 빚었다.

용주사 사태를 거치며 거침없는 언설을 쏟아내는 허정 스님은 늘 종단 비판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친자의혹이 불거지자 허정 스님은 문중 어른이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지금도 설정 스님을 비롯한 ‘권승’ 퇴진의 최전선에 섰던 승가모임과 승려대회추진위 기획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SNS를 통해 종단 큰스님들의 비리 의혹 등도 부지런히 알려가고 있다. 다만 개혁에 동참하는 이들의 전과 이력, 나이 위조, 성추행 등 같은 편의 허물은 철저히 감싼다는 지적이 없지는 않다.

정범 스님과 허정 스님, 누가 옳고 누구 그른 것일까. ‘논어’에는 초나라 섭공이 공자에게 “우리나라에 정직한 사람이 있어 아버지가 도둑질을 하자 아들이 친히 고발했다”고 자랑하니 공자는 “우리나라의 정직한 사람은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숨겨주고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숨겨주니 정직은 그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재형 국장

허정 스님은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을 찾지 않는 설정 스님을 두고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아니다”라고 질책했었다. ‘예의’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허정 스님의 설정 스님 비판이 오히려 예의와 거리가 멀다. 혹독한 비판만이 승가를 바로 세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를 감싸주는 우직함이 승가의 화합과 미덕을 되살릴 수 있다. 그것이 정범 스님과 허정 스님이 바라보는 ‘인간으로서의 예의’에서 오는 차이는 아닐까.

mitra@beopbo.com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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