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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종(無始無終)

여름폭염, 종말의 전조

무시무종(無始無終)은 시간과 공간을 보는 불교적 관점이다.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주는 불생불멸이다. 무시무종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순환하는 윤회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요즘 무시무종의 가르침보다 종말(終末)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올해 폭염은 최악이었다. 35℃이상일 때 내리는 폭염경보가 서울에서만 31일이라는 최장기록을 세웠다. 40℃에 육박하거나 넘어선 곳도 있었다. 폭염은 우리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세계가 폭염에 시달렸다. 찜통지구, 불타는 지구, 열받은 지구. 올여름 언론을 장식한 단어들이다.

원인은 온난화 때문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늘어난 탄소배출로 100년 동안 1℃가 올랐다. 그 1℃의 온도상승이 극지방의 빙산과 히말라야의 설산을 녹이며 홍수와 가뭄, 불타는 여름과 혹한의 겨울을 번갈아 불러오고 있다. 앞으로 온도가 더 올라가면 동토의 땅과 극지방 바다에 갇혀있는 엄청난 양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쏟아지게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나라들은 ‘파리기후협정’을 통해 온도상승을 산업혁명 이전보다 2℃아래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지구온도는 10년에 0.2℃씩 상승하고 있다. 2100년이면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경고다. 지구상에 생명이 종말을 고한 적은 여러 번이다. 그럼에도 생명이 새롭게 번성했다. 이 또한 무시무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생명이 스스로 종말을 향해가는 것은 인간이 처음이다. 지구를 달구고 있는 것은 탄소가 아닌 바로 인간의 탐욕이다. 그래서 무섭다. 분리수거를 하고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으로 종말을 늦출 수 있을까? 우리 자식들의 삶은 또 어찌 될 것인가. 무시무종의 가르침보다 당장 앞날의 삶이 두려운 것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들과 더불어 우리가 중생이기 때문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52호 / 2018년 8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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