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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생 본다는 젊은 여성

기자명 이제열

“전생은 스스로 만든 환상일 뿐”

명상하면 타인 전생까지 보여
연인이 전생의 원수라고 착각
과거·미래일 집착은 비불교적

영국에서 이메일 한 통이 날아 왔다. 서른 살이 넘었다는 한국여성이 보낸 것이었다. 서신에 따르면 그녀는 어려서부터 전생을 보는 능력을 지녔다. 명상을 하면 자신은 물론 남의 전생도 영상처럼 떠올랐다. 그러면서 자신이 10겁 전에는 가섭부처님을 따르는 신도였고, 3겁 전에는 ‘금강경’에 나오는 아주 난폭한 가리왕이라고 했다. 이러한 능력을 지닌 그녀는 자연스럽게 윤회를 가르치는 불교에 호감을 갖게 되었고, 명상수행을 통해 자신의 전생을 좀 더 확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자신이 현재 결혼 상대자로 두고 있는 연인과의 관계였다. 절실히 사랑하는 연인은 바로 몇 생 전에 자신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라는 것이다. 전생에도 그 연인은 자신과 사랑하는 관계였는데 자신의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고 그도 자결했다고 한다. 물론 그 연인은 전생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만 자신으로써는 두려움과 증오심이 뒤엉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금생의 부모는 둘 사이의 결혼을 승낙하고 상대방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은 전생의 일을 굳게 믿고 있는 터라 둘 사이에 원한 관계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을 것이고 마침내 큰 불행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에게 어떻게 해야 둘 사이의 업보를 청산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었다.

서신을 다 읽고 나니 참으로 안타까웠다. 사람을 옭아매고 괴롭히는 일도 여럿인데 분명치도 않은 전생일로 고통을 받는다니 어이가 없었다. 전생체험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를 실체화시키고 집착하는 그녀의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도 않는 사물이나 사건들을 만드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환각이나 환시, 환청, 환통 등이 모두 뇌가 일으키는 거짓 현상들인 것이다. 사람들이 신비롭게 여기는 대부분의 종교체험들도 우뇌의 측두엽에서 만들어진 환각 증세이거나 망상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설하신 윤회는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부처님이 윤회를 설하셨으니까 중생들이 과거생과 미래생에 큰 관심을 갖기를 원하셨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는 오산이다. 부처님은 과거 생이나 미래 생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윤회는 설하셨으나 윤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집착하는 행위는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맛지마니까야’의 ‘번뇌의경’에는 “수행승들이여, 정신을 쓰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정신을 쓰면 번뇌가 생겨나고 번뇌가 성장한다. 무엇에 대해 정신을 쓰지 말아야 하는가? 곧 나는 과거세에 누구였으며 무슨 일을 했을까? 또한 나는 미래세에 무엇이 될까? 하고 현세에 이를 의심하는 일이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견해의 심취, 견해의 숲, 견해의 왜곡, 견해의 밧줄, 견해의 감옥이라 부른다”고 나와 있다.

많은 불자들이 자신의 전생에 대해 궁금증을 지닌다. 하지만 부처님은 윤회에 대한 관심은 괴로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가르치셨다. 바로 서신의 내용과 일치하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간단히 답장을 띄웠다. “법우님, 중생에게 있어 전생과 내생 일을 아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전생에 관한 모든 사건들을 남김없이 마음속에서 지우십시오. 법우님이 본 모든 전생은 다 법우님 마음이 만든 환상이며 속임수들입니다. 전생은 기억되기보다는 조작된 것들입니다. 이를 잘 이해하고 마음 놓고 그 연인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십시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답장을 받지 못하였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53호 / 2018년 8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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