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쟁사에 ‘가장 긴 전쟁’이자 ‘유일하게 진 전쟁’으로 기록된 베트남전에 우리나라는 32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했다. 이는 미군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든, ‘주한미군 2개사단 월남전용 저지’를 위해서든, ‘한강의 기적’으로 명명된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베트남 파병을 조건으로 한국은 미국에 경제협력을 요구했는데 그 결과 베트남 파병 직후인 1965년부터 종전된 1975년까지 10년 동안 국민총생산은 14배로 늘었고, 외환보유액과 외국환 등의 총액은 24배로 불었으며, 수출총액은 29배로 뛰어 올랐다. 그 대가로 우리는 5000여명의 전사자와 2만5000여명의 부상자, 8700여명의 고엽제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선뜻 꺼내기도 어려운 단어, 학살이다.
베트남에 파병된 주요 부대는 각기 슬로건을 내걸고 전쟁에 임했는데 두 내용이 대표적이다. ‘깨끗이 죽이고, 깨끗이 불태우고, 깨끗이 파괴한다.’ ‘놓치는 것보다는 오인사살이 낫다.’ 훈장, 특진이라는 마장에 걸려든 한국군은 결국 턴지앙촌, 럽담마을, 하미마을 등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학살마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린선사(Linh Son Temple)에 머물고 있던 스님과 행자에게도 난사했다.
당시 민간인 희생자는 약 9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통역사가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할 수 없기에 벌어진 진 일”이라는 항변은 당시 참극을 목도한 증언자들의 말에 비춰볼 때 설득력이 없다.
우리는 희생자 영령은 물론 그 후손들에게도 참회해야 한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봉행하려는 ‘베트남 전쟁 양민 희생자 추모재’도 참회의 한 맥락이기에 의미 있다. 종단이 안정되면 현지에서의 추모재도 봉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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