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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법성게’ 제5구: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기자명 해주 스님

진성은 법성 바로 못 깨닫는 중생 위해 연기방편 시설한 것

법성게 첫 4구는 증분이고
그 다음의 14구는 연기분

중생의 증분법성 증득위해
진성 이름 지어 연기분 시설

망심 중생 진성에 의거해서
부처님 지혜를 증득하므로
진성이 매우 깊고 극히 미묘

의상, 12연기로 진성 설명
이를 통해 증분세계 들어가

“일체 모든 여래께서 부처님 법을 설하심이 없으니, 응하여 교화할 바를 따라서 법을 연설하신다. (一切諸如來 無有說佛法 隨其所應化 而為演說法)” (‘야마천궁보살설게품’)
“부처님이 법계에 충만하시어 널리 일체 중생 앞에 나타나신다. 연을 따라 중생에게 두루 나아가시나 항상 이 보리좌에 앉아계신다. (佛身充滿於法界 普現一切衆生前 隨緣赴感未不周 而恒處此菩提座)” (‘여래현상품’)

부처님을 찬탄하는 ‘화엄경’ 게송이다. 여기서 설하심이 없으면 증분이고 설하심이 있으면 교분(敎分)이니, 교분은 즉 연기분이다. 그런데 부처님이 설하시는 그 자체는 연기라 하지 않는다. 여래의 현상(現相)에 대한 게송에서도 부처님이 중생연을 따라 두루 나타나시지만 부처님이 연을 따르시는 것은 연기(緣起)라고 하지 않는다. 항상 보리좌에 앉아계시고 법계에 충만하시는 여래출현의 증분 성기(性起)이다.

경의 제목으로 볼 때 ‘대방광불’은 증분이고, ‘화엄’은 보살도(菩薩道)로서 연기분에 해당한다. 불(佛)과 보살의 인과(因果)관계는 연기이다.

의상 스님은 ‘법성게’의 첫4구는 증분이고 다음 14구는 연기분이라고 분과한다. 연기분 가운데 처음 2구는 연기의 체이고, 그 첫 구절이 ‘법성게’의 제5구인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이다. “진성이 매우 깊고 극히 미묘하다”는 것이다. 증지[證智]로 알 수 있는 증분법성을 망심(妄心)의 중생이 증득하고자 하므로 임시로 진성(眞性)이라는 이름을 지어 연기분을 시설한 것이다.

의상 스님의 대표제자인 표훈(表訓) 스님은 진성이 중생의 팔식(八識) 망심의 체이고 부처님의 지혜와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성의 ‘진(眞)’은 머무름 없는 본법[無住本法] 이고, ‘성(性)’은 본분 종자이다. 본분 종자란 ‘화엄경’ 초회(初會)에서 설하고 있는 과지(果地)의 5해(五海)이다. 이 5해로 본식(本識)의 체를 삼는다” (‘총수록’ 대기)

5해(五海)는 ‘노사나불품(盧舍那佛品)’에서 모든 세계·중생·법계 존재의 업·중생의 욕락과 근성·삼세 부처님 등을 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보현보살이 이 5해를 먼저 관찰하고서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게 하려고 열 가지 지혜[十智]를 설하고 있으니, 다섯 바다는 모든 덕을 구족한 불지혜를 의미한다. 반면 본식은 근본식이니 제8아뢰야식을 가리킨다. 이는 비록 중생의 망심이기는 하나, 연기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다. 이 본식에 의하여 행업(行業)과 서원(誓願)이 일어난다. 이 본식의 체가 진성으로서 부처님의 지혜라는 것이다. 만약 상근기의 사람이라면 바로 증분에 의거하여 자기의 몸과 마음이 곧 법성임을 증득한다. 그러나 이 증득한 곳은 이름과 모습이 끊어진 까닭에 중·하근기의 사람은 믿지 못한다. 따라서 5해가 자기 본식의 근원이라고 설하니, 이로써 중·하근기가 자기의 몸과 마음이 곧 법성임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증득할 수 있는 근기가 보현보살의 근기라고 한다.

이처럼 중생 망심의 본체인 이 진성에 의거하여 비로소 자기본식의 근원이 부처님 지혜임을 증득하도록 하는 까닭에 진성이 매우 깊고 극히 미묘하다고 한다.

의상 스님은 연기의 체인 진성을 12연기(十二緣起)로 설명하고 있다. 즉 10중(十重) 12연기관을 통하여 무분별의 증분세계에 들어가게 한 것이다. 이 까닭에 ‘진수기’에서도 진성은 유정문(有情門)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12지가 서로 반연하여 유정의 생사고통이 이어지기도 하고, 생사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정의 수행방편이 되기도 함을 뜻한다.

여기서 의상 스님이 진성을 12연기로 설하고 있는 내용을 잠깐 짚어보기로 한다. ‘일승법계도’에서 ‘현전지’의 10중 12연기설을 천친(天親) 보살의 ‘십지경론’과 지엄 스님의 ‘공목장’ 설을 재인용하여 유정의 증입문(證入門)으로 삼고 있다.

십이지(十二支)는 ①무명(無明) ②행(行) ③식(識) ④명색(名色) ⑤육입(六入) ⑥촉(觸) ⑦수(受) ⑧애(愛) ⑨취(取) ⑩유(有) ⑪생(生) 노사(老死)의 12가지이다.

무명이란 근본진리[第一義]를 여실히 알지 못함을 말한다. 행은 무명에 의한 강한 의도로서의 업이고, 식은 행을 의지한 첫 마음이며, 명색은 식과 함께 생겨난 이름과 물질이고, 육입은 명색이 증장해서 이룬 육근(안이비설신의)과 육경(색성향미촉법)이다. 근·경·식(根境識)의 만남이 촉이고, 촉에 의한 감각적 지각이 수이고, 수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갈애가 애이고, 애가 증장하여 집착함이 취이고, 취가 일으킨 유루업의 잠재적 존재가 유이다. 그리고 유의 인연으로 인한 5온의 화합이 생이며, 온의 성숙과 소멸이 노사이다.

이 12지의 인연과보 관계인 십이연기를 아래와 같이 열 번 관찰하는 연기관을 통하여 생사의 경계가 해탈의 경계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흥륜사 신라 십성 의상 스님 진영. 신라를 빛낸 인물관 소장(사진 왼쪽).<br>흥륜사 신라 십성 표훈 스님 진영. 신라를 빛낸 인물관 소장(사진 오른쪽).<br>
흥륜사 신라 십성 의상 스님 진영. 신라를 빛낸 인물관 소장(사진 왼쪽).
흥륜사 신라 십성 표훈 스님 진영. 신라를 빛낸 인물관 소장(사진 오른쪽).

그러면 10중 12연기관의 명목과 내용은 어떠한가? 이를 간단히 요약해본다.

1. 인연이 나뉘어 차례가 있음[因緣有分次第]을 관한다. 십이인연이 앞의 것[支]을 인연으로 하여 차례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이 있고 내지 노사가 있다. 그래서 짓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지어지는 것도 없다.
2. 한 마음에 포섭되는 바임[一心所攝]을 관한다. 욕계·색계·무색계의 삼계(三界)가 모두 한 마음이 지은 것이니, 십이인연 또한 모두 한 마음에 의한 것이다. 생사가 있는 마음은 망심(妄心)이고 생사가 없는 마음은 진심(眞心)이다.
3. 자상(自相)과 업으로 이룸[自業成]을 관한다. 십이인연의 각 지(支)에 두 가지 지음이 있으니, 무명의 경우 어리석음이 무명의 자상이고, 행(行)을 이루는 원인이 되는 것이 무명의 업이다.
4. 서로 버리거나 여의지 않음[不相捨離]을 관한다. 십이인연중 앞의 지(支)가 뒤의 지를 일으키지만, 뒤가 없으면 앞도 없다.
5. 세 길이 끊어지지 않음[三道不斷]을 관한다. 십이인연중 번뇌도(煩惱道. ①⑧⑨)·업도(業道. ②⑩)·고도(苦道. ③~⑦,⑪⑫)의 세 길이 자성이 없으나 생멸을 계속하여 끊어짐이 없다.
6. 과거와 미래제[先後際]를 관한다. 십이인연중 과거세(①②)·현재세(③~⑦)·미래세(⑧~⑫)의 삼세가 끊임없이 계속 이어지나 무명이 멸하면 삼세의 상속도 멸한다.
7. 세 고통이 모인 것임[三苦集]을 관한다. 십이인연중 행고(行苦. ①~⑤)·고고(苦苦. ⑥⑦)· 괴고(壞苦. ⑧~⑫)가 다 고통이다. 만약 무명이 멸하면 이 세 고통의 상속도 끊어진다.
8. 인연으로 생함[因緣生]을 관한다. 십이인연의 모든 지(支)가 자신의 인(因)과 앞의 지(支)의 연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9. 인연의 생함과 멸함에 묶여 있음[因緣生滅縛]을 관한다. 십이인연이 모두 짓는 이가 없고, 단지 서로 따라서 생과 멸에 묶여 있는 것이다.
10. 있음과 다함을 따르는 것임[隨順有盡]을 관한다. 십이인연 중 앞의 지를 연(緣)하여 뒤의 지가 있고, 앞의 지가 멸함에 뒤의 지가 멸한다.

이상과 같이 우선 중생의 첫 번째 무명의 지(支)를 기준으로 하여 열 번의 관을 거치면, 무명의 이름과 모습을 움직이지 않고 곧 곁이 없는[無側] 이름과 모습을 이루어서 취하고 버릴 바가 없기 때문에 매우 깊고 미묘하다고 한다. 무명지(無明支)가 그런 것처럼 내지 노사지(老死支)도 다 또한 이와 같다.

“이처럼 곁이 없는 이름과 모습을 움직이지 않고서 곧 바로 이름을 여의고 모습을 끊는 것이 보현보살의 근기이다. 만약 열 부처님의 증득을 기준으로 하면 처음부터 이름과 모습 등을 보지 않는다.”(‘진수기’)

열 번을 헤아리는 것은 10은 원만수이니 한량없음을 나타낸다. 열 번의 인연이 앞과 뒤가 있기도 하지만, 육상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앞과 뒤가 없이 동시이기도 하다.

‘입법계품’에 보이는 해운(海雲) 비구 선지식의 해탈법도 12연기의 관찰이다. 세속가(世俗家)를 버리고 여래가(如來家)에 태어나고자 원한 선재동자에게 12연기관으로 생사 바다가 그대로 깨달음의 바다이어서 곧 여래가(如來家)임을 깨닫게 해준다. 생사고통은 단지 자기 생각이 만드는 것일 뿐이다.

법성이 유정· 무정 일체 존재의 본래 그러한 세계라면, 진성은 유정이 연기를 관찰하여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하고 있는 방편이다. 진성자체가 법성과 다른 것이 아니라, 법성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중생에게 연기방편을 시설하여 진성이라 이름 한 것이다. 아무튼 진성이 ‘심심극미묘’함을 통틀어 말하면, 진성이 자성을 고수하지 않고 연을 따라 이루기 때문이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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