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고종 원광사 주지 지광 스님
부산 태고종 원광사 주지 지광 스님
  • 정리=주영미 기자
  • 승인 2018.09.04 13:43
  • 호수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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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에서 벗어나 나눔 실천하는 이가 지혜로운 불자입니다”

팔만대장경 핵심은 보살행
육바라밀 실천하는 삶 의미
부족하지만 이웃과 나누고
정의롭다면 물러서지 않으며
남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지혜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
지광 스님은 “부처님이 과거 수많은 생에서 공덕을 쌓아 부처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이생에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광 스님은 “부처님이 과거 수많은 생에서 공덕을 쌓아 부처가 된 것처럼 우리도 이생에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가 되지만 100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의 티끌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기 위해 평생 아등바등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재물이 모이고 나면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직위가 높은 곳에 올라가면 그 직위에서 내려오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은 물론 명예에도 너무 집착하면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은 법회를 위해 모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간이 끝나면 각자 집으로 또는 각자 할 일을 위해서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 죽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삶에서 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또 이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30대에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정복하고 보니까 어느 날 죽음의 문턱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생을 마감하면 관의 양쪽에 구멍을 뚫어서 내 손을 밖으로 내어놓고 장례식을 치러 달라.” 그래서 신하들은 대왕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세계를 다 제패하고 모든 영역이 다 나의 영역에 들어왔지만 죽음길에는 하나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비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종종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팔만대장경이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한 단어로 줄이면 글자 두 자가 됩니다. ‘보살(菩薩)’입니다. 보살이라는 표현을 조금 더 펼쳐서 설명한다면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어떤 존재일까요? 바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을 실천하는 분입니다.

육바라밀을 행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보시(布施)’ 바라밀을 이야기합니다. 보시라고 하는 것은 ‘물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보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남편이 가족을 잘 보살피는 것도 보시, 부인이 가족들을 잘 챙기는 것도 보시입니다. 자식들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고,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를 보살피는 것도 보시입니다.

집안에서 보시가 제대로 되지 않는데 밖에서 보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내 이웃으로 점차 확대해 가면 온 인류에게 보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시의 진정한 의미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나에게 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준다는 의미입니다. ‘금강경’에는 ‘응무소주 행어보시(應無所住 行於布施) 소위(所謂)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 부주성향미촉법(不住聲香味觸法) 보시(布施)’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색은 눈으로 보는 것인데 어떻게 보시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눈으로 어떤 것을 분별하지 말라. 또 냄새, 소리 이런 것들을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시라는 것입니다.

저도 보시에 대한 이야기를 늘 하지만 보시를 실천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우리 절을 이끌어가는 신도님들 중 한 신도님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님, 저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자합니다. 지금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사람이지만 길을 지나가다가 빈병이 있으면 그 빈 병을 주워서 모읍니다. 또 제가 미장원에 가면 머리카락을 한 번 자르는데 1만5000원에서 2만원정도 합니다. 그래서 미장원에 가지 않고 제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릅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합쳐서 5~6만원을 들고 경로당에 가서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였습니다. 그것이 제가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에게 베푼 것입니다.”

그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출가한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가를 해서 다른 사람을 보살핀다고 하지만 이 신도님처럼 정말 실천을 했는가를 생각하고 참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육바라밀의 두 번째는 ‘지계(持戒)’입니다. 계율에는 섭율의계(攝律儀戒)라는 것이 있습니다. 섭율의계는 오계, 십중대계, 사미계, 사미니계, 비구계, 비구니계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섭율의계만 계가 아닙니다. 선법계(善法戒)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착한 일을 하라, 나쁜 것은 멀리하고 좋은 것은 받들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좋은 기회를 만났습니다. 인간의 몸을 받았다는 것도 좋은 기회이고, 사찰에 와서 기도를 할 수 있고,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백미를 전달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불자가 아니고 제가 주지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다음은 ‘인욕(忍辱)’입니다. 인욕이라는 것은 어렵고 힘든 것을 참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어렵고 힘든 것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로운 일에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정의로울 때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를 돕고 상대를 살릴 수 있지만, 정의롭지 못할 때에는 과감히 그 정의롭지 못한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바른 행위입니다.

다음은 ‘정진(精進)’입니다. 정진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기도입니다. 어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과거의 부처님들께서도 성불하기 위해 수많은 생을 죽기도 하고 병들고 고통 받기도 하고 남을 위해서 헌신의 길을 수 없이 걸으면서 공덕을 쌓았고 그 길로 부처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생에 부처가 되지 못할지언정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은 심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민총생산(GDP) 순위는 세계 12위입니다. 상당한 수준의 선진국 대열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00년부터 부산 금사동에 있는 작은 포교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2층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종종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 60대 후반의 보살님이 한 손에는 작은 수레를 끌고 다른 한 손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또 한 아이는 앞에 세우고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걸어갑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되었습니까?” “그분은 아들이 사업을 했는데 IMF 때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가니 며느리도 아이들을 버리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아이들을 할머니가 키우는데 아들이 있다는 서류상의 내용 때문에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지 못해 여전히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절 살림을 아껴서라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야 되겠다고 발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나눔이 올해는 쌀 1500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쌀을 나눈다고 해서 부산시내 모든 어려운 분들을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선행을 많이 하신 가톨릭의 한 수녀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바다에 빗방울이 떨어진다고 표시가 나겠습니까? 제가 하는 일이 저 바다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같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인연되는 사람에게는 저 작은 쌀이 전해질 것입니다. 이 양식을 먹을 때만이라도 걱정 없이 밥을 드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마음이고, 이 도량 모든 불자님들의 소망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이지만 그래도 나눔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일입니다.

다섯 번째 바라밀은 선정(禪定)입니다. 선정이라는 것은 항상 닦는 것입니다. 항상 닦으며 나의 생각이 바르지 못하면 생각을 고치고,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행동을 고치며 관음의 행, 지장의 행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섯 번째 ‘지혜(智慧)’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여러분이 믿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는 관세음보살님도 있고 지장보살님도 있고 아미타불이 있고 문수, 보현 모두 이 몸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진실로 내 몸에 팔만사천의 부처가 있고 팔만사천의 보살이 있고 팔만사천의 신장이 있다는 사실을 진실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불 속에 들어가더라도 ‘관세음보살’하면 살아난다, 물에 빠지더라도 ‘관세음보살’하면 살아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불이 나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불이 났지만 관세음보살을 염불할 수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굉장히 냉정해 집니다. 그 냉정함으로 자신이 어느 쪽으로 가야 이 불길을 탈출할 수 있을까, 찾다보면 발견하게 되고 그곳을 가다 보면 소방관이 올라와서 구출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이 힘이 바로 관음의 힘이고, 거기에 온 소방관은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어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구제된다는 의미입니다. 스스로를 구제하시고, 주변의 사람들을 도와주시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들을 침착하게 살펴보고 실행한다면 그것이 여러분의 지혜가 되어서 여러분을 잘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중 기간 동안 많은 기도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 닦았습니다. 또 1년 내내 준비한 백미 농사를 어제까지 다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 백미를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여러분과 함께 지금 이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이 끝이 아니라 시작의 첫날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 또 농사를 지어서 내년에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정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8월26일 부산 온천2동 태고종 원광사(주지 지광 스님)에서 봉행된 ‘추석맞이 이웃사랑 백미 전달법회’에서 지광 스님의 설법을 옮긴 내용입니다.

 

[1454호 / 2018년 9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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