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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소금의 가치와 1회용 플라스틱

기자명 최원형

소금을 지키는 것도 망가뜨리는 것도 우리에게 달렸다

바다는 온갖 유기물·무기물의 보고
인간 버린 폐기물에 쓰레기장 전락
세계 모든 바다 미세 플라스틱 오염
천일염에도 미세 플라스틱 발견돼

이불 두께가 달라지나 싶더니 엊그제가 찬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대하는 마음이 딴판으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염천을 머리에 이고 살던 지난여름의 그 해가 오늘 아침 떠오른 이 해와 다르지 않을 텐데도 변하는 계절이 낯설고도 반갑다. 떠올려보니 그 여름 햇살은 뻗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루를 좌절시켜버렸던 것 같다. 숨 쉬기조차 버거운 기온이 연일 이어지면서 급기야 입맛을 잃고 말았다. 배는 고픈데 몸이 받아주질 않으니 기력도 점점 딸렸다. 이렇게 몸이 지치니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대로 먹질 못하고 며칠을 지내다 생각해낸 게 오이지였다. 어릴 적 먹어본 적도 없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이지를 먹으면 입맛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오래 전 어느 식당에서 딱 한번 맛봤던 오이지무침이 느닷없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누구와 어느 식당에서 먹었는지조차 다 잊어버렸지만 그 미각만은 내 머릿속에 잘 저장되어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오이지 요리법을 찾아보니 무침도 있고 냉국도 있다. 일단 좀 쉬워 보이는 냉국을 만들어봤다. 그 길로 입맛을 찾았고 오이지는 그렇게 해서 내 여름밥상을 든든하게 지켜줬다. 짜게 먹는 것은 곧 건강에 해롭다는 공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엔 짭짤하게 먹는 게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고 알고 있다. 나는 어떤 과학적인 이론보다 조상들의 지혜에 무한신뢰를 보낸다. 여기서 관건은 좋은 소금이다.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간 고품질의 천일염이라면 오히려 짜게 먹는 게 건강에 이롭다고도 한다.

햇볕에 증발시키든 끓이든 바닷물을 주재료로 만든 게 소금이니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곧 바닷물을 먹는 셈이다. 그러니 소금의 질은 바다가 좌우할 수밖에 없고 깨끗한 바다에서 깨끗한 소금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바다는 온갖 유기물과 무기물의 칵테일이다. 그런 바다에다 인간은 온갖 쓰레기들을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다. 그물, 부표 등 어업용 쓰레기에다 1회용 플라스틱 등 온갖 쓰레기들이 합세하며 바다는 말 그대로 쓰레기장으로 전락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파도에 이리저리 쓸리며 풍화되고 내리쪼이는 자외선에 잘게 부서진다. 이렇게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은 플랑크톤의 몸을 거쳐 상위포식자의 몸으로 축적되는 중이다. 미세 플라스틱은 우리가 입는 합성섬유를 세탁할 때도 꾸준히 나온다. 우리나라 남해안의 미세 플라스틱 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인 걸로 이미 알려져 있다. 양식장에서 제대로 수거하지 않은 스티로폼 부자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바닷물로 만든 소금이 깨끗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 아닐까. 얼마 전 우리나라 천일염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대형마트와 염전에서 판매 중인 천일염을 분석해봤더니 시료에서 직경 0.17mm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소금에 섞여있었다고 한다. 우리 시력으로는 볼 수도 없는 크기다. 더 정밀한 분석기기로 분석해 보니 파란색 혹은 연두색의 미세한 플라스틱 조각들이 소금에 많이 섞여있었다고 한다. 전국 십여 곳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생선이나 굴에서의 미세 플라스틱 검출도 심각하나 천일염에서 검출은 매우 충격적이다. 생선이나 굴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소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변까지 순환하는 북태평양 아열대 순환류에 미세 플라스틱이 리터당 최대 0.25mg 정도 들어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세계 어느 바다든 미세 플라스틱은 있다. 어떤 바다에는 동물성플랑크톤과 비슷한 양의 미세 플라스틱이 있는 경우도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석유화학제품이어서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세 플라스틱이 주변의 오염원을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다는 데 있다. 그러니 단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라 오염된 플라스틱 조각인 셈이다. 이런 미세 플라스틱이 더 작게 나노 수준으로 잘게 쪼개진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단순히 플라스틱 조각이 우리 몸의 위나 내장에 머물다가 배출되는 수준이 아니라 인체에 흡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나노 크기의 플라스틱이 인체의 주요 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만약 뇌에 도달하게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실험실에서 어업용 부자를 좀 세게 풍화시켰더니 나노 사이즈로도 충분히 쪼개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인도 속담에 ‘아버지의 가치는 타계 후에 알고, 소금의 가치는 없어진 뒤에 안다’ 는 말이 있다. 소금의 가치를 지키는 것도 망가뜨리는 것도 우리에게 달렸다는 걸 더 늦기 전에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55호 / 2018년 9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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