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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푼니카 ②

기자명 김규보

“육신 씻으면 악업서 벗어납니까?”

물로 악업 씻는다는 바라문 말에
선업도 물로 씻겨 가는지 반문
그 말에 바라문 부처님께 귀의

그날 이후 푼니카는 기회 될 때마다 기원정사로 가서 붓다의 설법을 들었다. 하녀의 신분이어서 기원정사를 매일 방문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심을 더욱 북돋게 했다. 악업을 녹이고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간절함의 크기만큼 깊고 고요한 선정에 잠겨 붓다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마음에 새겼다. 열심히 정진한 결과, 푼니카는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냈다. 스스로를 옭아맸던 세 가지 번뇌를 내려놓았고 더 이상 악업에 물들지도 않았다. 미소 머금은 얼굴과 부드러운 말투, 배려 어린 행동은 누구보다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험상궂은 표정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던 푼니카를 외면해오던 그들은 이제는 오히려 존경하며 스승처럼 생각할 정도였다.

어느 날, 푼니카는 평소처럼 물을 긷기 위해 강가로 나아갔다. 얼마 전까지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걷던 길이었으나 더는 그런 마음은 없었다. 대신에 붓다의 말씀을 되뇌며 수행하듯 평화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강가에 이르자 푼니카의 시야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손끝만 살짝 닿아도 온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물속에 한 바라문이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울 텐데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실제로 바라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몸은 지진이 난 땅 위에 서 있는 듯 떨리고 있었다. 물을 긷다 궁금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바라문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물을 긷기 위해서입니다. 즐겁진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일을 합니다. 바라문께서도 몸을 떨고 계시는 걸 보니 물속에 계시는 게 즐겁진 않은가 보네요. 이토록 추운 겨울에 옷까지 벗고 목욕을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라문인 자신에게 하인이 말을 건네는 것이 마땅찮은지 얼굴을 더욱 구기다가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너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이곳에서 악업을 씻고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그동안 지었던 악업이 말끔하게 씻기게 된다. 이 가르침을 잘 새겨듣도록 하라.”

하지만 푼니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붓다의 말씀에 따라 악업을 녹이는 과정은 내면에 가득했던 삼독을 벗겨내는 마음의 수행이었지, 물로 육신을 씻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함이 풀리지 않아 다시 한 번 말을 건넸다.

“육신을 씻으면 악업에서 벗어난다고 누가 말한 건가요? 그게 맞는 말이라면 개구리, 거북이, 악어는 당연히 천상에 가는 건가요? 그게 맞는 말이라면 도축업자, 어부, 사냥꾼등 악업을 지은 사람들도 육신을 씻는 것만으로 악업을 지울 수 있다는 말인가요? 흐르는 물이 악업을 씻는다면 선업도 씻어가겠군요. 그러면 당신에겐 아무것도 안 남게 되겠지요. 바라문이시여! 어리석은 행동 그만두시고 차가운 물속에서 나오세요.”

한낱 하인에 불과한 사람이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했던 바라문은 푼니카의 말을 듣고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당황했다. 푼니카의 말처럼 악업을 물로 씻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망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푼니카여. 당신은 삿된 길로 향하던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이 옷을 보시하겠으니 부디 받아주소서.”

“나는 옷을 원하지 않습니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가르침을 받드는 승가에 귀의하세요. 괴로움을 싫어한다면 삼보에 귀의하고 계율을 지키세요.”

푼니카의 말을 들은 바라문은 물속에서 나와 옷을 입고 차분하게 앉은 채로 발원했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 가르침을 받드는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바라문교 수행자를 귀의하게 만든 푼니카는 그 후에도 하인 계급으로서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일상 속에서도 수행을 거듭했다. 그리고 강가에서 99번째 물을 긷던 날, 수닷타 장자의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끝.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55호 / 2018년 9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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