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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제주 법정사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9.17 10:19
  • 수정 2022.05.04 00:01
  • 호수 1456
  • 댓글 13

일제강점기 첫 항일 무장투쟁
스님과 불자 등 700여명 동참
일제강점기 불교계 성찰 필요

조성택 고려대 교수는 근대 한국불교 이해를 위한 새로운 키워드로 ‘딜레마’를 제시했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유럽 식민지처럼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종교가 다를 경우 피식민자의 전통종교는 저항과 새로운 민족담론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지만 한국의 근대불교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선진적 근대불교의 모델로 인식됐던 일본불교를 따르자니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잃게 되고,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면 새 시대의 사회적 유용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딜레마에 직면했다. 더욱이 조선왕조는 500년간 불교를 억압했던 탄압자 성격이 강했고, 일본은 한국불교계를 족쇄에서 풀어준 은인의 성격도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 교수의 ‘딜레마론’은 역사관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근대불교를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불교인들이 항일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던 것은 그래서 더 높은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불교계의 항일운동은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때 창기 스님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910년 일본불교의 지원으로 한국불교의 일본화를 꾀했던 원종에 맞선 임제종 운동,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를 맡았던 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의 활약, 그해 11월 범어사 주지 성월 스님을 비롯해 12인이 불교계 대표 이름으로 상해에서 발표한 대한승려연합회선언, 스님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운동, 비밀지하조직 만당 활동 등 불교계 항일운동은 해방될 때까지 지속됐다.

이 가운데 불교계의 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10월7일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법정사 스님들과 불자 등 700여명이 중문 주재소를 공격해 불살랐던 무장투쟁이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 이전 일제에 항거한 전국 최대 규모의 단일 투쟁이며, 제주도 최초·최고의 거사라는 측면에서 항일 운동사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봉기 한 달 전에 구체적인 계획이 공표됐음에도 정보가 일제 당국에 누설되지 않을 정도로 끈끈한 연계 속에서 이뤄진 점도 놀랍다.

당시 일제에 무력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김연일, 방동화, 박주석, 강창규 스님 등과 700여 대중들은 이날 중문주재소를 없애고 일본인 주재소장, 경찰, 일본인 상인 등을 붙잡았으며, 조선인 구금자를 석방했다. 당시 일제는 이 항일무장 운동의 파급성을 두려워해 내란죄를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4개월 만에 66명을 검거, 44명을 기소했을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꼈다. 일제는 법정사 항일운동을 ‘사이비종교인들에 의한 소란’으로 철저히 왜곡했고, 이러한 인식은 1994년 당시 재판기록문과 수형인 명단이 나올 때까지 지속됐다.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주에서는 관련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한금순 박사의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과 이를 동화로 풀어낸 노수미 작가의 ‘법정사 동이’ 북콘서트가 9월21일 서귀포시청에서 열린다. 또 10월4일 서귀포시청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는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 학술대회도 열린다. 10여명의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발표와 토론에 참여해 법정사 항일운동을 재조명하고 활성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이재형 국장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성찰 없는 미래는 암담하다. 우리 불교계가 역사의 기준을 세우려면 이제라도 승자 위주의 일방적 평가와 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법정사 항일운동 100주년이 일제강점기 항일과 친일을 냉정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mitra@beopbo.com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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