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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시와 이상한 글씨들

기자명 이제열

“이런 식 말고 직접 나타나 말하라”

미륵불 계시받았다는 스님 글
알아볼 수 없는 정체불명 글자
미륵과 관계 없다는 말에 떠나

낯선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방에 사는데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날짜와 시간을 정해 찾아오시라고 했다. 만나 뵌 스님은 60대 중반쯤 되어보였고 출가생활도 꽤 오래 하신 분으로 보였다. 그 스님은 자신을 지리산 토굴에서 정진하는 스님이라고 소개하면서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스님에 따르면 자신은 도솔천 미륵불로부터 계시를 받고 법문을 듣는데 그게 모습을 친견하거나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손을 통해 글로써 전달받는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부처님 앞에 앉아 공책을 펴놓고 연필을 들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팔이 움직이면서 글이 써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자신이 쓴 글들이 적힌 여러 권의 공책을 보여주었다. 호기심에 그 글들을 읽어보니 도무지 글자 모양이 혼란하고 무질서하여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혼자서 중얼중얼 수십 시간 뱉어 놓은 것처럼 정체불명의 글자들만 공책마다 가득하였다.

나는 스님이 가지고 온 글자들이 무슨 글자인지 그 의미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스님은 세상에 이 글자를 아는 사람은 대도(大道)를 깨달은 도인만이 알 수 있는데 혹시 도인은 아니더라도 경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찾아왔다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스님의 이 같은 말에 나는 스님이 쓴 글이 미륵부처님의 법문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이 글들이 미륵부처님의 계시가 틀림없는 것은, 토굴에 모시고 계신 미륵 부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를 통해 말법시대의 법문을 전해줄 터이니 이를 터득하여 인간들에게 전하라”는 계시를 받은 후부터 이런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스님에게 미륵불의 존재와 스님이 써내려간 글자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미륵불에 대한 바른 견해를 지닐 것을 부탁드렸다. 하지만 그 스님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며 가지고온 공책들을 바랑에 담고 찻집을 떠났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얼마 전 나는 이와 비슷한 일을 다시 겪게 되었다. 그것은 평소 알고 지내던 신학을 공부했다는 기독교인으로부터였다. 그 사람과 어느 날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아 방언을 하고 영서를 쓴다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 방언은 신이 인간의 입을 빌려 내리는 말이고 영서는 신이 인간의 손을 빌려 내리는 글이다. 기독교인들은 방언과 영서를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기적 가운데 하나라고 여긴다.

아무튼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하면 이 자리에서 곧바로 영서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내가 한 번 보기를 원하자 그 사람은 잠시 기도를 하더니 메모지와 볼펜을 들고 알 수 없는 글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글자들을 보면서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그 글자들의 모양이 바로 일전에 본 그 스님의 글자들과 너무도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미륵불이 계시하여 내려준 글자나 여호와가 내려 준 글자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나는 내친김에 그 사람에게 이왕이면 그 의미까지 해석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그 사람은 자신이 쓴 글을 이렇게 풀이해 주었다.

“너 이제열은 왜 내가 보낸 예수를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며 창조주인 나를 멸시하느냐? 나는 만물 만생의 주인이며 세상의 심판자로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이 사람에게 명하노니 속히 회개하고 주를 믿으라.”

나는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하나님께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말고 종로 네거리에 직접 나타나셔서 내게 명령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전해 달라.”

이후 그 사람이 그가 믿는 여호와에게 내 부탁을 전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아직도 그의 신은 내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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