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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이건청의 ‘산’

기자명 김형중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짐승’에 비유
탐·진·치 놓고 산에서 순수회복 조언

산은 사람 마음을 본래자리인
순수·깨끗한 상태로 회복시켜
단순한 마음을 가진 짐승처럼
초발심 지키며 깨달음 구해야

산이 나를 막아선다
맨몸으로 오라고
짐승 되어 오라고
밀어내고 넘어뜨린다
기어서 기어서
벼랑에 다가서도
짐승이 아닌 나를 한사코
벼랑에서 밀어낸다.

산은 자연의 원시상태이다. 짐승은 자연의 주인이다. 인간 역시 자연에서 나왔으나 문명의 옷을 입었다. 문명은 자연을 오염하고 훼손한다. 따라서 산은 문명의 주인인 인간을 거부한다. 그래서 인간이 산에 오르려면 “맨몸으로 오라”고 읊고 있다. “짐승이 되어 오라고 밀어내고 넘어뜨린다”고 하였다.

이 시에서 ‘짐승’은 원시적인 인간 즉,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상징한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 등 삼독심이 없는 인간을 뜻한다.

산에 올라와서 아름다운 산을 즐기고 쉬기만 하면 될 텐데 그 산을 정복하고 소유하려 한다. 더 쉽고 편안하게 오려고 케이블카를 건설하고, 아예 살려고 별장을 짓는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자르고 파헤쳐서 자연을 파괴한다. 인간 손길이 닿는 곳에서 자연은 상처를 입는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면 된다. 산은 정복 대상이 아니다. 산을 정복하려는 것은 인간의 오만한 마음이다.

시인은 산에 오르려는 사람에게 ‘오만한 마음, 탐욕스런 마음, 분노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본래 순수한 마음으로 오를 것을 종용하고 있다.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智者)는 바다를 좋아한다”는 옛말이 있다. 산은 사람의 마음을 본래의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상태로 회복시켜준다. 아름답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다.

산과 바다는 자연의 공간이고, 그 공간에서 인간과 동물이 산다. 짐승은 동물 가운데 진화의 정도가 인간에 가장 가까운 네 발 달린 포유류 동물이다. 인간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중생은 우리 고유어 짐승의 한자어다. 중생이 본래 부처이다. 중생은 오염된 부처이다. 인간은 으뜸 중생으로서 부처에 가장 가깝지만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건청(1942~현재) 시인은 ‘산’에서 ‘짐승’을 인간의 가장 순수한 원형으로 표현하고 있다. 산은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기 때문에 탐욕이나 분노의 오염된 마음을 가진 사람을 거부하고 막아선다. 이 시에서 ‘짐승’을 무지몽매하고 포악한 늑대나 승냥이로 이해하면 전혀 이 시를 이해할 수 없다.

설악산 오현 스님의 열반송과 계합(契合)하는 시이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는 중생들의 대표적인 행위다. 모든 중생은 다 그렇게 살아간다. 다만 수행을 통해서 보살이나 부처의 삶을 삶게 된다. 그래서 스님의 열반송을 “내가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아왔으니 짐승이었구나”라고 스스로의 삶을 겸손하게 표현했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

‘선림승보전’에 조산 본적(曹山本寂) 선사의 피모대각(披毛戴角) 공안이 있다. 본래 의미는 피모대각인 짐승처럼 사량분별이나 집착하는 일 없이 수행을 하라는 것이다. 인간은 욕심이 너무 많고, 수행자는 빨리 깨달음을 얻으려고 성급하게 서두른다. 그래서 조산 선사는 “단순한 마음을 가진 짐승처럼 초발심을 유지하며 생각이 혼잡하지 않고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건청은 등산가이고, 오현은 수행자였다. 공통점은 산에서 마음을 찾고 닦으며 산을 사랑한 사람이다. 단풍이 든 가을산은 아름답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56호 / 2018년 9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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