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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과 비구니스님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9.27 09:32
  • 수정 2020.11.13 19:38
  • 호수 1457
  • 댓글 4

세간 남녀 모두 차별받는다고 인식
승단 내 ‘82년생 김지영’ 비일비재
비구니스님도 이젠 목소리 높여야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가를 표현한 소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겪게 되는 차별은 주인공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이어진다. 성인이 되어서도 차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과 회사에서의 성희롱을 비롯해 육아를 홀로 감당하면서도 ‘맘충’으로 비난받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출간 후 이 책은 20~30대 여성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 이 소설의 영화화와 주연배우가 확정되면서 인터넷상에서 다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영화화를 지지하는 이들과 반발하는 측이 거센 댓글 공방을 펼치는가 하면 영화화 반대가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이어졌다. 어떤 이는 네이버 해당 영화게시판에 ‘82년생 김철수’라는 제목으로 현대사회의 남성이 겪는 역차별에 관한 내용을 게재했다. 이 글은 불과 며칠 새 조회수가 2만명을 넘어섰고 수백 명의 남성들이 깊은 공감을 표명하는 댓글을 남겼다.

이 같은 현상은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여성대로, 남성은 남성대로 불평등을 체감하는 온도차가 확연히 다름을 보여준다. 촬영조차 시작하지 않은 영화를 두고 남녀의 인식 차이가 성대결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종교계는 남녀 중 누가 불평등하냐는 논란이 무색한 곳이다. “남자라는 성별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펙”이라는 고 노회찬 의원의 지적이 종교계보다 더 적절한 곳은 찾기 어렵다. 종교와 관련된 숱한 제도, 문화, 관습에서 혹독한 여성차별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여성으로 태어나 출가했기에 받아야 하는 차별은 일생을 따라 다닌다.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다수 비구니스님들은 신심 하나로 살아가는 일꾼에 가까웠다. 경전을 배울 곳이 마땅히 없었고 배움에 뜻을 세웠더라도 온갖 냉대와 괄시를 견뎌야 했다. 혹시나 벌어질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떨어야 했고, 행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있으면 고스란히 비구니스님에게 책임이 전가됐다. 근래에도 비구스님들이 ‘팔경법’을 내세워 비구니스님들을 무시하는 일이 태반이었고, 비구니는 비구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는 글을 썼다가 비구강원 스님들이 단체로 몰려와 압박하는 사건도 있었다.

94년 종단개혁 당시 비구니스님들의 역할은 컸다. 외부에 비구들의 종권 다툼으로 비춰지지 않은 것도 비구니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후 비구니 위상이 높아졌다지만 제도는 비구니차별의 오랜 관행을 제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종정을 비롯해 방장, 원로의원, 총무원장, 교육원장, 포교원장, 호계위원, 법규위원, 교구본사주지 등 주요직책을 모두 비구가 맡는 것으로 명문화했다. 개혁과정 중에 종회의원 80석 중 20석을 비구니 몫으로 약속했으나 이마저 10석으로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다. 교구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산중총회에 비구스님은 법랍 10년 이상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지만 비구니스님은 말사 주지로 한정하고 있다. 평생 해당 교구에 머물렀더라도 말사 주지를 맡지 못하면 발언권조차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고질적인 차별은 조계종 36대 총무원장 선거인단에서 또다시 확인됐다. 전체 318명의 선거인단에서 비구니는 10%(32명)에 불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대통령과 총리들이 활약하는 시대에 ‘82년생 김지영’보다 더 노골적인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여성출가자의 길을 누가 선뜻 택하겠는가.
 

이재형 국장

이번 총무원장 후보스님들은 비구니특별교구 설립 등 비구니스님들의 위상 강화를 약속했다. 차별과 부조리를 해소하지 못하고 ‘신뢰받는 불교’는 요원하다. 한국불교는 여성차별이라는 역주행을 멈춰야 한다. 

mitra@beopbo.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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