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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불시대, 봉산(封山)과 사찰 지키기

조선은 억불숭유(抑佛崇儒)의 시대였다. 불교를 억제하려는 정책에 따라 왕도였던 한양성을 비롯하여 8도의 감영 등에 있었던 사찰 대부분이 폐사되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서울과 지방 대도시의 주요 시가지 내에 있었던 사찰들은 대부분 폐사되어 흔적이 없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게 된 사찰들은 대부분이 산중의 대찰들과 작은 암자들뿐이었고, 이들 사암(寺庵)이 조선시대 불교의 명맥을 잇는 명줄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산중 사찰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전승하는 데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겨우 명맥을 보존하던 산중 사찰과 그곳에 살고 있는 승려들은 더한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수탈과 착취에도 불구하고, 산중에 존재했던 사찰들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불교전통의 살아있는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찰들 대부분은 상당한 산림(山林)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찰 소유의 산림이 국유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이다. 한 발 더 나가서 그 국유림(?) 안에 있는 사찰부지와 사찰 역시 국가에서 하사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1970년대에 전국에 걸쳐 산림육성사업이 진행되었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산림보존 조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봉산(封山)이다. 봉산(封山)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특정한 목적의 목재를 얻기 위해서 지정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봉산(封山)이 지정되면, 인근 사찰의 승려를 도산직(都山直)으로 임명하고, 해당 사찰에 산림 유지의 책임을 떠맡기는 것이 일반직이었다. 보통은 그 대가로 사찰에 부여되었던 세금이 일정 범위 내에서 감면되었다.

조명제 선생 등이 역주한 ‘역주 조계산 송광사사고 산림부’에 따르면, 그 부역 곧 세금의 감면 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송광사 절 안에 살고 있는 승려들의 부역(세금) 면제 항목은 모두 15항목이다. 다음은 그 중의 두 항목이다.

하나. 본부(本府)의 집무실, 군관들의 집무실, 통인청의 창고지기, 관노사령, 마목장(磨木匠), 옥문지기, 포진장(鋪陳匠), 송도감부사의 창고지기, 군기고의 창고지기, 관청창고의 사환, 향교의 창고지기, 면주인(面主人, 공문서 전달자), 도산직감독관, 면산직 감독관, 야산직 감독관, 도포수, 향약의 임원직, 낙수역의 마부, 본면의 서원(書員), 연감(年監) 등에게 의례적으로 지급하던 물건은 모두 침탈하지 말 것.

하나. 관청에 상납하는 간장, 된장, 밀가루 등을 침탈하지 말 것.

부역 면제에 대한 항목은 15항인데, 그 중의 1개 항목에 나타나는 착취항목이다. 고을의 수령만 이름을 올리지 않았지, 지방의 관청과 군사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인력 그것도 관청의 심부름꾼에 이르기까지 사찰로부터 ‘의례적’이라는 명목 하에 수탈을 자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관청에서는 간장, 된장, 밀가루까지 수탈해갔다.

‘의례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세금처럼 부과되고 있었기에, 중앙 관청에서 규정한 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역(세금)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 정도가 과도했다는 의미이다. 세부 세금 항목의 숫자는 대략 100여 가지이다. 면제된 것은 그렇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종류의 종이는 만들어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림을 그냥 준 경우도 없지만, 사찰과 승려, 사찰 소유의 산림까지에 모두 100여종 이상의 세금을 내고서야 사찰에서는 겨우겨우 존속을 인정받고, 승려의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100여종 이상의 세금을 수백 년 동안 내고서야 유지되었던 것이 오늘날의 산중사찰인 셈이다. 그리고 그 세금은 억불숭유의 조선시대에도 사찰의 재산권 자체는 인정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떻게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공동의 유산일 수 있는가?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huayen@naver.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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