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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암자에서 인생과 철학을 배우다

  • 불서
  • 입력 2018.09.27 09:48
  • 수정 2018.09.27 09:52
  • 호수 1457
  • 댓글 0

‘상무주 가는 길’ / 김홍희 지음 / 불광출판사

‘상무주 가는 길’
‘상무주 가는 길’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면서 세월이 바뀐다. 그러나 암자는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단정하든 정갈하든 삶을 줄이는 것이다. 버릴 것이 없는 곳, 다 버린 곳, 더 이상 덜어낼 것이 없는 곳, 이쯤 되어야 암자다.”

글 쓰는 사진작가 김홍희가 암자를 찾는 이유다. 그는 암자가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처럼 숨어있는 듯하지만 실은 가공한 다이아몬드를 숨겨두는 곳이라고 말한다. 알려진 암자의 알려진 암주를 만나러 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잘 드러나지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쉬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암자를 찾을 때의 기쁨이 큰 것도 이 때문이란다.

지난 1990년 대 중반 어느 일간지에 ‘암자로 가는 길’ 연재 이후 23년 만에 그때 그 시절 암자를 다시 찾은 김홍희가 그 여정을 기록했다. 작심하고 2년에 걸쳐 혼자 모터사이클을 이용해 오른 26곳 암자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정찬주의 ‘암자로 가는 길’,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조용헌의 ‘방외지사’ 등에 사진을 실었고, 스스로도 몇 권의 저서를 통해 사진에 관심 있는 대중들에게 이름과 얼굴이 알려져 있다.

‘상무주 가는 길’은 그런 그의 인생과 철학, 예술 세계가 응집돼 있다. 그가 다시 찾은 암자들은 23년 전 그대로였다. 전국에 산재한 암자 수십 곳을 오르고 오르면서 그는 “암자마다 인연이 따로 있는 듯하다. 다시 가고 싶은 암자는 뭔가 마음의 짐을 진 곳이다. 갚을 것이 있는 암자는 반드시 다시 가게 된다. 못 갚게 되면 내생에 갚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이 세상에 온 이상 다 갚고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한 다시 가게 된다. 현생을 내생으로 미루지 말기. 이게 공부 아닐까”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부안 내소사 지장암은 앉은 자리가 다소곳하고 좌우 치우침이 없다. 소박하다. 그곳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삶을 들춰 보이며, 물건과의 인연을 버려 가볍게 살아가라고 말한다.<br>
부안 내소사 지장암은 앉은 자리가 다소곳하고 좌우 치우침이 없다. 소박하다. 그곳에서 저자는 현대인의 삶을 들춰 보이며, 물건과의 인연을 버려 가볍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서 결국 암자에서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카메라도 버리고 남은 한 자루 펜도 버릴 수 있는 ‘무상(無想)의 마음’과 마주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 순간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대장암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빛과 그림자 사이, 길과 길 없는 길 사이, 더 이상 갈 수 없는 가장 높고 고귀한 곳(암자)’을 상무주(上無住)라고 말하는 저자가 그곳 상무주에서 가피이자 영험을 받은 셈이다.

책은 그렇게 찾은 26곳 암자의 풍광을 담았다. 세심한 감성으로 포착한 100여 컷의 흑백 사진이 그곳에서 길어 올린 사유의 결과물인 글과 함께 실렸다. 사진과 글이 서로 섞이지 않으면서도 조화를 이뤄 읽는 맛이 보는 맛을 돋우고, 보는 맛이 읽는 맛을 깊게 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며 저자가 가피 입은 상무주에 함께 오르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힘겹게 올라온 잔설 쌓인 오르막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내려가기. 미끄러지지 않고 잘 내려가는 것도 이 길을 올라왔다 내려가는 중에 해야 할 공부”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과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고, 한층 성숙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날 수 있다. 1만98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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