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사람처럼 지능을 갖는 시대가 되자, 동심은 더 재미나는 상상을 하게 된다. 숙제를 전담하는 숙제 로봇, 컴퓨터로 조종되는 인공다람쥐, 스스로 공책 위를 걸어 다니며 글을 써주는 지능연필 등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필요한 게 있다. 동심은 놀 시간을 넉넉하게 갖고 싶은 거다. 아쉽고 부족한 게 놀 시간이다. 컴퓨터시대가 되면서 가게에, 길가에, 지하철에 자판기가 나타나 점원 대신 상품을 판다.
이러한 자판기 시대에 시간을 내다 파는 시간 자판기가 없으라는 법은 없다.
“나는 잠자는 시간이 부족해.”
실컷 자고 싶은 어린이는 시간 자판기에서 잠잘 시간 단추를 꼭 눌러, 넉넉하게 잠잘 시간을 사서 지닐 수 있게 됐다.
“나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공부 시간, 숙제할 시간이 부족한 어린이는 공부할 시간 단추를 꼭 눌러, 넉넉하게 시간을 사가지고 공부하면 된다.
그런 여러 시간 중에서 부족한 것은 놀 시간이다. 공부 시간, 숙제 시간이 놀 시간을 앗아간 거다. 이제 시간 자판기가 있으니 놀 시간 확보가 어렵잖게 된 것.
시간 자판기
신 정 아
아~
공부, 또 숙제
시간이 부족해!
모은 용돈으로
시간을 사러 갔다.
➀ 공부할 시간
➁ 놀 시간
➂ 잠잘 시간
➃ 군것질 할 시간
➁ 번 단추를
꾹 누르는데
‘깜박깜박’
품절이네.
누가
몽땅
사갔나 봐.
이잉,
또 못 놀겠네!
신정아 동시집 ‘시간 자판기’(2018)
시의 캐릭터는 착한 꼬마, 노력을 하는 어린이다. 숙제와 공부를 거듭하다 보니, 놀 시간이 없다. 꼬마에게 필요한 건, 노는 시간이다. 어떻게 노는 시간을 해결할까?
길거리에 시간 자판기가 있으니, 해결은 매우 쉽게 됐다. 모아 놓은 용돈을 가지고 시간 자판기에 시간을 사러갔다. 자판기로 살 수 있는 시간은 ➀번 단추를 눌러서 ‘공부할 시간’을 ➁번 단추를 눌러 ‘놀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➂번 단추는 잠잘 시간이다. ➃번 단추를 누르면 군것질할 시간을 원하는 것만큼 지닐 수 있다.
꼬마가 필요한 시간은 공부할 시간, 놀 시간, 잠잘 시간, 군것질 시간 중에서 놀 시간 확보다. 그래서 ➁번 단추 ‘놀 시간’을 꾹 눌렀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깜빡깜빡 “품절이에요!” 하는 신호다. 누가 시간 자판기에 와서 ‘놀 시간’을 몽땅 싹쓸이해 간 거다.
“이잉, 또 못 놀겠네.” 캐릭터 꼬마는 실망이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시의 작자 신정아(申丁牙) 시인은 ‘월간문학’지에 동시(2012) ‘시와 동화’지에 동화(2017)가 뽑혀 등단을 했으며 황금펜 아동문학상(2016)을 받았다. 단국대에서 아동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지은 책으로 동시집 ‘사탕 과자 쉬어버리면 어쩌죠’(2012), ‘시간 자판기’(2018) 와 평론집 ‘신현득의 동시세계’(2015)등이 있다. 단국대 등에서 ‘아동문학론’을 강의하고 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57호 / 2018년 9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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