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항상 육바라밀 행으로 중생교화에 나서야

중국 정공 스님의 '무량수경청화' 법문 ⑱

육바라밀, 실천강령으로 삼아
매순간 준수하고 타인 이끌며
믿음·발원·염불행 놓지 않으면
서방극락세계 도달할 수 있어

9월17~19일 프랑스에서 열린 ‘2018년 국제평화대회’에 참석해 강연 중인 정공 스님.
9월17~19일 프랑스에서 열린 ‘2018년 국제평화대회’에 참석해 강연 중인 정공 스님.

“항상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의 육바라밀 행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보리심을 세워 위없는 진정한 도에 머물 수 있도록 하였느니라(恒以布施, 持戒, 忍辱, 精進, 禪定, 智慧, 六度之行, 敎化安立衆生, 住於無上眞正之道).”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들은 보살의 육대강령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며 반드시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신이 보시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보시하라고 권하면 다른 사람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실천하면 매우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이를 보고서 부러워할 것입니다. 이렇게 권하고 이끌면 그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기꺼이 배울 것입니다.

그래서 보살행으로써 다른 사람을 도와서 중생을 교화하고, 보리심을 세워 위없는 진정한 도에 머물 수 있도록 이끕니다. 위없는 진정한 도는 바로 서방극락세계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중생이 믿음·발원·염불행으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도록 이끕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순간 여섯 가지 원칙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첫째는 보시입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돕습니다. 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즉 재보시(財布施)·법보시(法布施)·무외보시(無畏布施)입니다. 보시는 인(因)으로 재산이 많길 바라면 재보시를 닦아야 하고, 총명하고 지혜가 있길 바라면 법보시를 닦아야 하며, 건강하고 오래살길 바라면 무외보시를 닦아야 합니다.

무외보시 중에서 제일은 일체중생을 괴롭히고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살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생에게 근심 걱정이 생기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채식은 중생의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무외보시에 속합니다. 더욱 적극적인 것은 방생입니다. 저는 복보가 없고 단명할 사람이었지만, 현재까지 살고 있고 복보는 매년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이번 생에 불법에 따라 수학해온 과보입니다. 총명지혜도 늘어나 일체 사리가 이전보다 훨씬 또렷해집니다. 그래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도 더욱더 알맞고, 원만해집니다.

둘째는 지계(持戒)입니다. 부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제정하신 계율과 법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간의 법률과 풍속습관도 준수하여야 합니다. 만약 계율을 폐기하면 불법의 수행은 사라질 것입니다. 설사 날마다 경전을 강설하고 연구·토론하여도 모두 허사가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생활과 어긋나면 배운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행’을 중시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부류의 청정한 계(三聚淨戒)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섭율의계(攝律儀戒)로 이는 부처님께서 경전에서 노파심에 거듭 충고하신 일체 훈계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결단코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은 어겨서는 안 됩니다.

다음은 섭선법계(攝善法戒)로 무릇 선은 응당 해야 하고, 악은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을 막고 악을 그치며, 악을 끊고 선을 닦음이 지계의 정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비록 말씀을 하시지 않아도 부처님의 뜻과 상응하는 것은 모두 준수하여야 합니다. 불경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말씀은 없지만, 담배를 피우면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좋은 점이 없으므로 금해야 합니다.

끝으로 요익유정계(饒益有情戒)입니다. 중생에게 이익이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눈앞에 이익은 있지만, 장래에 폐해가 있는 것은 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이점이 있고, 장래에도 이점이 있다면 진정한 선입니다. 또한 눈앞에 아무런 이익이 없지만, 장래에 큰 이익이 있다면 이것도 선입니다.

셋째는 인욕입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인내하여야 성취가 있습니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좌절이 있습니다. 용맹정진할수록 좌절도 커집니다. 무시이래로 지은 악업의 업력으로 인한 장애는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인내심입니다. 인내심이 있어야 업장을 없앨 수 있고 수행에 진보가 있습니다.

넷째는 정진입니다. 정(精)은 순수하여 뒤섞지 않음이고, 진(進)은 진보입니다. 정진은 보살의 유일한 선근입니다. 요즘 불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범하는 잘못은 이것저것 뒤섞어서 많은 것을 배우려 한다는 점입니다. 비록 날마다 진보하더라도 뒤섞고 산란한 진보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이번 일생에 조금 성취하였는데, 훌륭한 스승님들에게 입은 은혜입니다. 이병남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뒤섞고 산란한 진보를 금하였습니다. 선생님의 교학법은 이렇습니다.

“아무리 총명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고작해야 두 가지만 배울 수 있다. 만약 세 가지를 배우면 결코 가르치지 않겠다. 자질이 모자라면 한 가지면 충분하다. 일문에 들어가 배우고 깨쳐야 일문을 더 공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병남 선생님 아래에서 저는 10년간 ‘아난문사불길흉경(阿難問事佛吉凶經)’ ‘아미타경’ ‘보현보살행원품’ ‘금강경’ ‘능엄경’ 다섯 경전을 배웠습니다. 이병남 선생님의 표준에 따르면 경전 한 권을 배우고 깨친 후에야 두 번째 경전을 배울 수 있습니다. 깨쳤는가의 표준은 강단에서 대중에게 아주 확실하게 강의할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강연을 하면 이병남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줄에 앉아 계셨는데,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방향, 하나의 목표로 기초를 잘 다지면 다른 경전이나 논서도 저절로 통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진정으로 경전의 뜻을 새기고 경계에 들어갈 수 있느냐 입니다.

다섯째는 선정(禪定)입니다. 선정은 마음에 주재함이 있어 안으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밖으로 상에 집착하지 않아 바깥 경계에 쉽게 동요되지 않는 경계입니다. 예컨대 저는 경전 한권을 배우면 온 마음을 이 경전 한권에 쏟아야 마음에 비로소 주재함이 있습니다.

여섯째는 지혜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는 바로 이성입니다.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상대하고 사물을 접할 때 이성과 지혜가 있어야 하고 감정을 쓰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할 여섯 가지 원칙이고, 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 보리심을 세우는 교육강령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58호 / 2018년 10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