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 스즈키선-하

기자명 장은화

선의 인습타파 정신, 근대 계몽주의와 상통

자유추구·개인주의 성향으로
미국인 매료시킨 스즈키 선

일본인 우세하다는 주장으로
오늘날엔 매우 비판적이기도

다양한 시대상황 살피지 않고
진실 동떨어진 결론은 말아야

선이 종교·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것이라는 스즈키의 선 해석은 불교와 비불교의 통합뿐 아니라 동서양을 아우르는 종교 및 철학 전통을 통합하고자 한 평생을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스즈키선이 순수체험과 신비주의를 지향하였고 또 이런 점이 서양의 종교적 보편주의의 희구와 부합된다는 맥마한의 통찰은 서양 지식인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보편주의의 열망은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가 들어와 있는 미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선을 특정 종교, 역사, 전통과 분리시켜서, 오로지 순수체험과 동일시하면서, 모든 종교형태의 근원이라고 보는 견해는 보편적 종교를 갈망하던 20세기의 서양인에게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열망은 현대 미국의 종교적 다원주의뿐 아니라 여러 불교전통 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불교통합운동(Buddhist ecumenism)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스즈키의 선은 또한 자유의 추구와 개인주의 성향 때문에 미국인을 매료하기도 했다. 선 문헌에 등장하는 선사들은 모방, 공허한 의례, 경전의 기계적인 학습 같은 정형화된 틀을 거부하는데, 이들의 무애자재한 행동은 2차 대전 후의 미국인에게 큰 호소력이 있었다. 당시 물질문명과 유대-기독교 등의 주류종교를 비롯한 서양의 사유체계가 삶에 대한 확실성이나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고 또 보편적 가치가 부재하던 때, 선은 인습타파와 자유의 메시지를 전달해주면서 기독교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선은 스스로의 노력과 통찰을 통해서 매개되지 않은(즉, 직접적인) 순수체험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미국사회의 개인주의적 성향에 호소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에서 보이는 인습타파와 개인주의의 성향은 근대 계몽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스즈키선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샤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스즈키선의 원천이 서양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비록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지적, 종교적 형식에 대한 환멸로부터 선을 포용하게 되었지만, 서양에서 포용한 선은 종종 서양의 형식들에 의해서 해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샤프는 이런 현상을 ‘나르시스와 마찬가지로 서양의 열혈지지자들은 그들 앞에 놓여있는 거울 속에 자신들의 모습이 들어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샤프에 의하면 선은 종교적 체험의 강조와 제도적인 종교형식에 대한 초연함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서양인을 매료했다는 것인데, 사실상 이런 측면들은 주로 서양에서 기원했다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스즈키가 종교적 체험을 강조한 것은 주로 친구인 니시다 기타로의 저작들에 의해 고취되었는데, 종교적 체험에 관한 니시다의 관심은 현대 서양으로부터, 특히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저작들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이며 니시다에게 제임스의 저작을 소개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스즈키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맥마한도 샤프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맥마한에 따르면, 스즈키의 저작에 에머슨, 소로, 쇼펜하우어가 많이 언급되어 있는데, 스즈키는 이들로부터 낭만주의와 관념론의 철학용어를 이끌어왔다는 것이다. 또한 스즈키는 괴테, 워즈워드, 알프레드 테니슨 같은 낭만주의자들로부터 시적인 감성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그의 사유체계는 스웨덴의 철학자 스웨덴보르그와 신지학으로부터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서양에서 스즈키 다이세츠의 선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매우 비판적이다. 선이 보편적 신비체험을 가리킨다는 스즈키의 주장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과 선사들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입을 모은다. 선이 일본문화의 진수라는 스즈키의 주장은 더 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스즈키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아시아의 이웃 민족들보다도 영적으로 더 진보했고 일본인의 삶은 본래부터 선과 유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천성적으로 선을 잘 이해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진행되면서 스즈키의 무절제한 주장은 더해갔다. 예를 들어 1944년에 대피호로 이동하는 중에 쓴 ‘일본인의 영성’(Japanese Spirituality)에서 스즈키는 진정한 선은 중국이나 인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가마쿠라 시대(1185-1333)에 불교와 일본 문화가 만나면서 나타났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일본인의 타고난 영성을 선전하고 그것을 무사의 기풍과 연계하고 있는 스즈키의 저작들은 그 시대의 대중적 정서와 상응했을지라도 스즈키는 이런 주장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물론 필자는 몇몇 서양학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러한 비판에 경도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다양한 시대상황을 사상(捨象)한 채 텍스트만 가지고 스즈키의 선을 재단하는 것은 진실과 동떨어진 결론에 빠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스즈키가 서양에 소개한 선이 일본의 전통선과 다른 것이었다고 해도, 또한 그가 선을 탈역사적으로 특정 부분만을 강조하여 서양에 소개했다고 해도, 적어도 스즈키선은 시대가 갈망하던 구제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해주었다. 스즈키가 선에 관한 저술을 활발하게 내놓던 20세기 초에 서양의 지식인들은 사유의 확실한 기반을 필요로 했고, 이 기반 위에서 자신들의 변화하는 경험과 직관을 표현할 방도를 모색하던 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즈키가 선을 보편적이면서도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시켜 서양에 제시했던 것은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고, 물론 그 과정에서 그는 서양사상을 수용하여 서양 친화적인 방식으로 선을 소개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선이 종교·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이라는 스즈키의 선 해석은 불교와 비(非)불교의 통합뿐 아니라 동·서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종교 및 철학 전통을 통합하고자 한 평생을 노력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스즈키가 선을 제시한 방식은 스즈키와 그의 지적인 후예들이 남긴 영속적인 유산이기도 하다.

일본문화와 선불교의 세계화를 꿈꾸며 서양으로 나아갔던 스즈키의 사례를 살펴보는 중에 ‘간화선의 세계화’라는 구호가 떠오른다. 이 구호는 몇 년 전까지 조계종에서 열성적으로 부르짖다가 요즘에는 없어졌다. 왜 이 구호는 허무하게 사라졌고, 또 한국선의 앞으로 향방은 어디가 돼야 할까? 어쩌면 스즈키선의 대중화에 그 해결의 단초가 있지는 않을까? 오늘날 서양에 일본선이 대중화된 이유 중에는 스즈키 다이세츠 같은 걸출한 인물이 출현하여 서양에 적합하게 선불교를 해석하고 제시한 점, 20세기 초 서양의 사상적 공백이 선불교 수용에 적합한 조건이 형성된 점, 그리고 기성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환멸로 선불교가 그 대안으로서 부각되었던 점 등이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어울려서 서양 땅에 선의 대중화라는 결과가 나오게 되었지만, 요즘 스즈키에 대한 비판이 드세져가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경향, 즉 포스트 선(post Zen)의 조류가 일어나는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일본선에 점철된 민족주의의 더께를 벗고 인류의 보편가치 구현에 더 적합한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장은화 선학박사·전문번역가 ehj001@naver.com

 

[1458호 / 2018년 10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