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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 화합과 혁신, 모두 필요하다

중앙승가대에는 불교사학연구소라는 작은 연구소가 하나 있다. 이 연구소는 1992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정기불적답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2박3일간의 빡빡한 일정 속에 진행되는 이 답사에서 연구소 소속 학인스님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한 학술논문을 직접 발표하는 자리를 갖는다. 불교역사의 소중한 현장을 찾아 한국불교의 어제와 오늘이 던져주는 다양한 교훈을 접하기도 한다.

2016년 11월 불교사학연구소 답사단 일행은 무주 안국사에서 1박을 하였다. 예정 시간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터라 이미 도량 전체는 컴컴한 상태였는데, 멀리서 손전등을 밝히며 환한 웃음으로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스님이 한 분 계셨다. 바로 당시 중앙승가대 총장으로 계시던 원행 스님이었다. 스님은 1박2일에 걸쳐 20여명의 학인스님들을 그야말로 극진히 돌보셨다. 학인스님들과 적상산 정상까지 함께 오르면서 나무와 들꽃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학인 한 분 한 분을 귀히 여기는 그의 진정어린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절 집안의 어른 한 분을 뵐 수 있었다는 느낌, 그 가을날의 안국사 추억은 지금껏 진한 여운으로 남아 있다.

혼란한 상황 속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새로운 집행부가 탄생하였다. 총무원장 탄핵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를 겪은 이후 진행된 선거였기에 이번 총무원장 선거를 바라보는 종단 안팎의 시선은 기대보다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후보자 세 분의 중도 사퇴로 인해 선거의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되고 말았다는 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대한불교조계종은 현행 종헌종법의 틀 안에서 존속되어야 하며, 이번 선거의 의미 또한 그러한 틀 안에서 평가되고 인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원행 스님은 총무원장 후보 등록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는 자리까지, 그리고 총무원장 인준을 받기 위해 소집된 원로회의 인사말에서도 줄곧 종단의 화합을 강조하였다. 그동안 보여준 스님의 언행으로 보아 무엇보다 종단화합이라는 목전의 과제는 잘 실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하지만 종단화합 못지않게 절박한 과제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종단혁신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1994년 개혁종단 출범 이후 대한불교조계종은 혁신의 노력을 경주해오지 못하였다. 개혁종단의 주체세력들은 출범 당시 내걸었던 다양한 기치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25년여의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들 스스로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고만 현실이다. 심지어 지금의 조계종단에는 과거보다 훨씬 공고해진 권력카르텔이 존재하고 있다는 목소리마저 들려오고 있다. 일반 사회나 우리 불교계나 혁신은 결국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만약 스스로 내놓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빼앗는 결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혁신과 화합, 이 둘은 공존이 불가능한 일로 인식하기도 한다.

제36대 조계종 총무원 집행부 앞에는 종단화합과 혁신이라는 시급한 과제가 놓여 있다. 집행부가 종단화합을 최우선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이에 치중한 종책을 펼쳐갈 경우, 자칫 종단 혁신이라는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추락한 종단의 위상을 회복하고 희망찬 한국불교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화합과 혁신이라는 과제는 반드시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이제 막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신 스님께 지나친 요청일 수도 있겠지만, 스님 스스로 총무원장에게 주어져있는 막강한 권력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의 종단혁신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천해갈 수만 있다면, 조계종단의 화합과 혁신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다. 조계종 제36대 총무원 집행부의 힘찬 도약을 발원해 본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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