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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공포심

기자명 이제열

온갖 번뇌 중 가장 잡기 힘든게 공포

견성했다는 어느 단체 회장
죽음 앞두고 삶에 무한집착
죽음의 공포서 비롯된 무지

충남 서산에 수행처를 만들어 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필자가 젊은 시절에 몸담았던 불교 단체의 신행회장이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과 함께 방문을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대화의 흐름은 자연히 수행 주제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마음이 어떻고 관이 어떻고 불성이 어떻고 그냥 두서도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데 한 신도가 필자에게 갑자기 “법사님은 아직도 우리 회장님이 견성한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눈앞에 자기가 추종하는 회장을 앉혀놓고 필자에게 견성여부를 묻다니 참 난감한 일이긴 하였지만 필자는 “회장의 스승이신 큰스님이라는 분의 법도 믿지 못하여 단체를 그만 둔 내가 그 분의 제자인 회장님을 견성했다고 인정할 것 같습니까? 정말 회장님 마음에 탐진치가 다했는지는 회장님만이 알겠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신도는 “우리 회장님은 정말 탐진치가 없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런 모습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말 견성을 해서 모든 공부를 마쳤는지 못마쳤는지는 큰일을 당해봐야 압니다. 평소에는 여여하다고 믿었던 공부의 경계가 과연 큰일 앞에서도 한결 같은지는 그 때 가봐야 압니다. 마음 가운데에 갖가지 번뇌가 일어나는데 특히 가장 잡기 어려운 놈이 공포입니다. 탐욕이나 성냄은 마음을 다스릴 여유를 주지만 갑자기 일어나는 공포심은 마음을 다스릴 틈을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조용히 앉아 있는데 옆에 벼락이 떨어져 사랑하는 가족이 죽는다고 칩시다. 과연 여여할 수 있을까요? 또한 중생에게 가장 큰일은 죽음이라 할 수 있는데 죽음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함부로 견성을 했느니 공부를 마쳤느니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자 그 회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법사님은 “똑같으시네요”라고 말하면서 떠났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받고 보니 그 회장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였더니 내게 드릴 말씀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 “과거 서산 수행처를 방문했을 때 법사님이 공포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새삼 그 말씀이 절실하여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회장은 “언제 기회가 된다면 세밀한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회장과의 전화 통화 내용도 잊어버리고 지내던 어느 날 서울 시내의 단골 이발관을 찾아 이발을 하는데 누가 인사를 하였다. 얼굴을 보니 과거 서산에서 필자에게 우리 회장님이 견성했느냐 못했느냐를 물었던 그 거사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대화 중에 그 거사는 회장이 3개월 전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암으로 오랜 시간을 투병하다 임종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 거사는 회장님의 돌아가시기 전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는 심경을 밝히기도 하였다. 필자와 서산에서 만난 후 어느 날 신도들이 회장을 모시고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신 이상한 사람이 하필 회장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이었다. 그 회장은 엉겁결에 도망쳤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더구나 병에 걸려 돌아가시기 전 회장님 모습에는 전혀 마음 공부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그 거사가 전한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회장이 왜 그와 같은 전화를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견성이라는 허울에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생에 대한 집착과 죽음의 공포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중생의 진실은 집착과 욕망과 공포와 절망이지 견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필자는 그 거사에게 “남의 견성여부에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견성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것이라는 망상을 버리셔야 합니다. 견성하려 하지 말고 거사님 자신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정직하게 시인하고 이를 다스려 나가야 합니다”라고 조언했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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