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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알렉산드로스의 세속적 숭고

기자명 김정빈

"알렉산드로스를 페르시아의 왕좌에 앉혀주소서”

마케도니아왕국 알렉산드로스
페르시아 다리우스와의 전쟁서
100만대군 격파하며 왕국 장악
적국 왕비·공주 포로로 잡았지만
욕보이지 않고 장례식까지 챙겨

숭고함은 종교인의 덕목이지만
세속 가치 추구하며 생기기도

그림=근호
그림=근호

알렉산드로스는 BC 356년에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에서 아버지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왕비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질이 불같이 뜨거웠다.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알렉산드로스에게 육체적인 쾌락은 하찮은 것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름을 떨치고 싶은 강렬한 공명심과 목표를 향한 성실하고 치열한 기백이었다.

BC 334년에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와 전쟁을 벌였는데, 당시의 페르시아는 지중해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제패하고 있는 대제국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놀랍게도 5만 명의 군대로 100만 명에 달하는 세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하였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까지 진격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장악한 ‘대왕’이 되었다.

페르시아 정복 전쟁 중에 알렉산드로스는 중병에 걸리자 어의 필리포스가 약을 지어 올렸다. 알렉산드로스가 약을 마시려 하는데 마침 파르메니오라는 장군이 보낸 밀서가 도착했다. 거기에는 “필리포스는 다리우스 왕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은 자로서 공주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된다는 조건으로 대왕을 독살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고 난 알렉산드로는 아주 쾌활하고 침착하게 약을 받아 마시면서 편지를 꺼내 필리포스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참으로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왕과 어의는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얼굴에는 우정이 반짝이고 있었고, 필리포스는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이 사건의 승자는 의심이 아닌 믿음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약을 먹고 나서 병을 떨치고 일어났다.

페르시아 대군을 패배시킨 다음 알렉산드로스가 다리우스 3세 왕이 사용하던 막사에 들어가 보니 진귀한 물품들이 가득했다. 그때 전령이 다가와 포로 중에 끼어 있는 다리우스의 어머니, 아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이 다리우스가 죽은 줄 알고 통곡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전령을 보내 이런 말을 전했다.

“다리우스 왕은 죽지 않았으니 울지 마시오. 그리고 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소. 나는 단지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것뿐이며 다리우스 왕에게 개인적인 미움은 조금도 없소. 지금까지 생활했던 것과 똑같이 지낼 수 있도록 해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오.”

다리우스는 알렉산드로스에게 편지를 보내 휴전을 제의하면서 사로잡힌 가족들의 몸값을 줄 테니 모두 환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는데 그러고 난 다음 얼마 안 지나 다리우스의 왕비가 아이를 낳고 나서 곧 죽었다.

왕비와 함께 포로가 되었던 사람 중에 티레우스라는 환관이 있었다. 그는 진영을 빠져나가 다리우스에게 도망을 쳐 왕비가 죽었다는 것을 알렸다. 다리우스는 왕비의 운명을 탄식하며 통곡했다. 그러자 티레우스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왕비님의 장례나 살아 계시던 때의 대접에 대해 운명을 탓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스타티라 왕비님과 공주님들, 그리고 대왕의 어머님께서는 무엇 하나 아쉬울 것이 없이 지내셨습니다. 왕비님의 장례식 또한 아주 정중하게 치러졌으며, 적들도 눈물을 흘리며 왕비님의 명예로운 마지막을 지켜보았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싸움터에서는 사납지만 승리를 거둔 뒤에는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우스로서는 환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아내는 절세미인이었고, 그의 딸들 또한 어머니 못지않은 미인들이었기 때문에 혹 알렉산드로스가 그들을 범하지는 않았을까를 염려했던 것이다. 그가 그 문제를 캐묻자 티레우스가 다리우스의 발밑에 엎드려 말했다.

“그런 의심으로 돌아가신 왕비님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지금 대왕님의 모든 불행 가운데서도 남아 있는 큰 위안은 대왕께서 여느 장수와는 다른, 인간 이상의 미덕을 갖춘 사람인 알렉산드로스에게 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페르시아 남자들에게는 놀라운 용기를 보여주었고, 페르시아 여성들에게는 한없는 너그러움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동한 다리우스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들고 기도했다.

“페르시아 왕국을 지켜주시는 여러 신들이시여! 페르시아를 다시 일으켜 제가 이 나라를 물려받았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나 만일 운이 다하여 페르시아 왕국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 부디 페르시아의 옥좌에 알렉산드로스가 앉도록 해주십시오.”

알렉산드로스에게는 덕인으로서의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장군을 홧김에 죽인 일이 있었고, 패전국 국민들을 몰살하거나 노예로 팔아버린 적도 있었으며, 페르시아를 정복한 다음 왕궁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담대했다는 것, 그 담대함이 때로 숭고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덕으로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때로 감정에 휩쓸려 큰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기본적으로 절제력 있는 사람이었고, 때로 그 절제력이 종교적인 경지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숭고함은 위대한 종교인들에게서 발견되는 위대한 인격성 중 하나이다. 그러나 종교인들의 숭고함과 알렉산드로스의 숭고함은 결과는 같지만 원인이 다르다. 위대한 종교인에게서 발견되는 숭고함은 세속 가치를 초월함으로써 생겨난 것이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서 발견되는 숭고함은 세속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종교는 세속적 영광을 헌신짝같이 여기라고, 그를 바탕삼아 세속을 초월한 숭고한 경지에 이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세속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종교인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같은 숭고함을 보여준 이는 매우 드물었다. 그나마 고대에는 있었던 그런 숭고함을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는, 입으로는 명예와 영광이 헌신짝 같은 거라고, 불교의 본질은 무탐무욕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그것을 추구하는 이들을 본다. 이렇게 세속과 탈속은 상반되면서도 교차한다. 종교인에게도 세속적인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가 없을 수 없고, 왕과 장군에게도 종교인으로서의 면모가 아주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삶은 단순하지 않다. 알렉산드로스의 몇몇 사례는 종교, 또는 불교가 참혹한 전쟁의 피흘림 속에서도 한 조각 금빛으로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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