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산과 계곡
19. 산과 계곡
  • 임연숙
  • 승인 2018.10.10 10:46
  • 호수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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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법·형태 깨뜨려 새롭게 탄생한 수묵

천년도 더된 재료 사용하지만
끊임없는 도전·실험과정 통해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확장
‘산과 계곡’, 한지 위에 수묵, 160×130cm, 1980년대.
‘산과 계곡’, 한지 위에 수묵, 160×130cm, 1980년대.

올해는 격년제로 열리는 미술축제인 국내 비엔날레가 유난히 많이 열린다. 전국적으로 10개 이상이 열린다고 하니 다 보려면 전국투어를 해야 할 일이다. 현대미술 중심의 비엔날레들 사이에 올해 처음으로 수묵비엔날레가 목포에서 열리고 있다. 수묵화를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가가 남천 송수남이다. 80년대 소위 수묵화운동을 통해 전통의 산수화나 사군자의 수묵을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확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작가다.

개인적으로 남천 송수남은 한국예술, 한국미술의 원론적인 미감과 예술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집요하게 찾아나갔던 작가이자 스승으로 기억한다. 단순히 재료나 그에 담긴 기법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묵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미술의 원류를 찾아나갔다. 작가는 한국적인 미감을 수묵에서 찾았지만 그 안에는 담백함과 무심함, 격조, 그것은 옛것의 단순한 계승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현대라는 날실에 맞게 변화하고 창의적으로 시도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한다.

수묵은 천년도 더 된 재료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작품세계는 현대적이다. 산수의 기법과 형태를 따르기보다 깨져야 새롭게 태어나는 방식을 택했다. 남천 송수남의 작가적 의미는 한국화를 단순히 세계화 시키는 구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스타일을 찾고 그것을 현대미술로 읽히는 지점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수묵화운동에 대해 ‘수묵이라는 재료 자체에 어떤 정신적 의미를 담는 것’ ‘그 안에서 사유를 찾는 것’이 현대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한다. 그러기에는 수묵은 너무나 단조로울 수 있다.

송수남이 찾고자 했던 것은 한국성과 한국의 미를 정의하고 한국미학을 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의 격변기를 거친 작가라는 배경은 전통의 단절과 그 단절을 다시 이어서 후배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작가이자 교수로서의 의지가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본다.

“전통화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중국화, 일본화와 구별되는 한국화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길은 수묵의 개발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또 수묵의 장점은 무한한 가능성에 있다고 봅니다. 보통 검정색은 검정으로 끝나지만 먹색은 변화가 무쌍하고 종이에 닿는 순간 또 다른 직감의 세계를 펼칠 수 있어요. 먹은 색의 시초이고 끝이며, 가장 우주적이고 영원성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극치에 이르면 동양의 선사상과 맥락이 통해요.”(남천 송수남,1983)

소개하는 작품은 1980년대 한참 자연 풍경을 단순화시키고 표현을 절제하면서 수묵의 맛을 보여주던 시기의 것이다. 먹의 번짐과 스밈이 붓과 먹과 종이가 하나가 된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응축된 긴장감으로 화면을 대담하게 먹으로 채우고 있지만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고 소박하면서도 격조가 느껴진다. 1990년대 이후 ‘붓의 놀림’이라는 주제로 수묵추상의 세계를 열었다. 수묵과 한지의 질감을 더해 현대미술로의 조형성을 완성해 나갈 즈음 돌연 화려한 꽃그림으로 잠시 외유를 했다. 그것 또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자 한 작가로서의 어떤 이유였을 것이다. 2013년 작고 직전까지 수묵화 프로젝트에 대한 강한 열망과 계획을 다 이루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수묵화를 주제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재조명되는 시점에서 스승님이 더욱 그리워진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전시디자인 팀장 curator@sejongpac.or.kr

 

[1459호 / 2018년 10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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