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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와 전두환과 법진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10.15 10:33
  • 수정 2018.10.19 12:11
  • 호수 1460
  • 댓글 1

조세희 작가 백담사 보고는 통탄
전두환 홍보는 만해 욕보이는 일
만해정신 되살려야 진정한 선양

1999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인제 백담사에서는 제1회 만해축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저명 학자들과 조병화, 김남조, 유안진, 신달자 시인을 비롯해 만해 스님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이들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화려한 개막식과 함께 20세기 한국문학을 총 점검하는 대규모 심포지엄이 열렸고, 한국무용, 시낭송회, 장기자랑 및 퍼포먼스도 열렸다.

이 행사가 향후 만해 스님의 사상과 문학을 세계화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찬사가 잇따랐다. 이러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소설가 조세희씨였다. 그는 1970년대 한국사회가 직면한 빈부와 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였다. 그는 만해축전 이틀째 아침 마이크를 잡더니 깊은 탄식과 준엄한 호통을 이어갔다.

이유인즉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머무르던 화엄실 안팎에 그들의 사진과 옷가지를 전시해 놓은 것이 문제였다. 은둔과 참회를 하겠다고 절을 찾는 사람을 내쫓을 수야 없겠지만 1980년 광주학살의 주역이자 독재로 수많은 이들을 모질게 탄압한 인물을 선양하면서 어찌 만해 정신을 운운하느냐는 것이었다. 만해를 욕 먹이지 않으려면 당장 화엄실 앞의 사진들과 홍보 문구들부터 없애라고 꾸짖었다. 당시 조 작가의 서슬 퍼런 비판에 주최 측도 별다른 답변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삼 20여년 전 일이 떠오른 건 선학원(이사장 법진 스님)의 과도한 만해 선양 때문이다. 선학원은 몇 해 전부터 만해 스님이 선학원의 설립 조사라며 만해추모대제, 만해문예전, 만해추모예술제, 만해추모학술회의 등을 잇달아 열더니 지난 6월에는 선학원 건물 내에 만해동상까지 만들었다. 외부에서 보기에 선학원 역사에는 만해 스님만 있는 것으로 비춰질 정도다.

허나 근현대불교 연구자인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논문을 통해 밝힌 것처럼 만해 스님은 선학원의 설립조사가 되기 어렵다. 선학원이 건립되던 1921년은 만해 스님이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다. 선학원이 승려의 결혼을 반대했다는 점에서도 취처론을 주장한 만해 스님의 행적과는 상당부분 어긋난다. 오히려 수덕사 만공 스님을 비롯해 남전, 용성, 성월, 도봉 스님의 역할이 컸고 정체성에도 더 부합한다.

그렇기에 선학원이 만공 스님보다 만해 스님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학원이 조계종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만공, 용성 스님 등을 추모·선양하는 것은 조계종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인정하는 모양새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학원은 만해라는 선지식을 내세움으로써 실추된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속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학원이 만해 스님을 대대적으로 추모한다고 하여 만해 스님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한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싶다. 무엇보다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3선 연임의 무소불위 권력을 구가한다고 비판받을 뿐 아니라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6월형을 선고받은 당사자다. 게다가 최근 이사회에서 결정한 임대사업 논란을 비롯해 특정 이사들 연임 강행 의혹, 창건주 권한 축소 등 숱한 비판과 의혹에 직면해 있다.
 

이재형 국장

만해 스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역사의 내리막길에서 홀로 매운 향내 뿜어내던 고고한 풍란이었다. 동시에 중생에게 새벽을 알리는 보살로서, 고통받는 중생을 싣고 고해를 건너는 나룻배로서 한평생을 살았던 선지식이었다. 선양은 여러 관련 행사만 연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 올곧은 정신을 현실에 적용하고 계승하는 데 있다. 행여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이 만해 스님의 그늘에 숨어 자신의 허물을 가리려는 것이라면 그처럼 만해 스님을 욕 먹이는 일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mitra@beopbo.com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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