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현 초청 일본불교 성지순례-상
야마가타현 초청 일본불교 성지순례-상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8.10.15 11:36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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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산맥과 드넓은 평야에서 성장한 천년의 불교문화

자연경관 빼어난 농업·어업 도시
모가미강 흐르는 평화로운 고장
천연온천 솟는 온천마니아 천국
반팔 입고 즐기는 스키장도 유명

불교신앙과 민간신앙 조화 이뤄
메이지유신 불교박해 흔적 남아
정원 명승지 지정된 교쿠센지는
고려 출신 요연법명 스님이 창건

츄렌지는 등신불과 천장화 유명
평생 민중 위해 헌신했던 스님
190년 지난 지금도 중생 의지처
저명 작가들의 천정화도 이색적
야마가타현 지역민들이 가장 성스러운 산의 하나로 꼽는 하구로산. 수령 300~600년의 삼나무와 2446개의 돌계단으로 이뤄진 이곳에는 순례자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야마가타현은 도쿄에서 동북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연경관이 뛰어난 지역이다. 곳곳에 천연온천이 솟아나고 특색 있는 온천들도 많아 온천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오온천스키장과 한여름에도 반팔을 입고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갓산스키장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다.

야마가타현은 동쪽으로 오우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고, 현의 중앙에 데와산지, 아사히산지, 이이데산지가 있다. 이 산지 사이에 있는 분지를 모가미강이 흘러 쇼나이평야를 지나 바다로 흐르는 한없이 정겹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험준한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야마가타현은 과거 유배지로 이용될 정도로 격리된 지역이었다. 2차 세계대전 때 화를 입지 않은 것도 이러한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지금은 신칸센이 개통되고 자동차도로가 속속 개통함에 따라 야마가타가 새로운 상공업 도시로도 주목받고 있지만 여전히 농업과 어업의 비중이 크다.

고려 출신 선사가 창건했다는 교쿠센지의 정원.

야마가타현은 일본의 옛 시골과 농촌 풍경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으며, 오래된 건축물과 유적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야마가타현을 찾는 것도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려운 매력과 미식가들을 즐겁게 할 풍성한 먹거리 때문이다. 도쿄와 같은 대도시가 매끈한 도자기라면 야마가타는 질그릇에 가까운 셈이다.

고대에 불교가 전해진 야마가타현에서는 일본의 민간신앙과 조화를 이루며 발달해왔다. 70%가 산지인 야마가타현은 데와삼산(出羽三山)이라는 갓산(月山), 하구로산(羽黑山), 유도노산(湯殿山)을 중심으로 신도와 불교가 합쳐진 산악신앙이 크게 성행했다. 천태종, 정토종, 선종 등 종파들도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유서 깊은 사찰과 건축물들이 야마가타현에 많은 것도 이 지역에서 불교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3박4일 일정으로 야마가타현을 방문한 순례단이 처음 찾은 곳은 쇼나이 지역의 교쿠센지(玉泉寺)였다. 오전 10시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2시간 뒤 니가타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차량으로 이동한 지 3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즉신성불한 데츠몬카이 스님의 등신불과 천장화로 유명한 츄렌지.

조동종 사찰인 교쿠센지는 일본정부가 명승지로 지정한 정원이 있는 사찰이다. 가마쿠라시대(1251년) 요연법명(了然法明)이라는 선승에 의해 건립됐다. 그런데 이 스님은 놀랍게도 고려인이었다. 고려에서 태어난 요연 스님은 중국 경산사에서 도를 닦고 경전을 익힌 후 고려가 아닌 일본을 향해 바다를 건넜고, 이곳 야마가타현에 바랑을 내려놓고 선종사찰을 세웠다.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요연 스님을 이곳 교쿠센지에서는 사찰 안내문에 명시하고 있으며, 선사의 모습까지 조각해 개산당(開山堂)에 모셔놓았다.

나무와 꽃들이 아기자기한 경내를 지나 교쿠센지 내부에 들어서면 다다미 너머로 정원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인상 좋은 주지스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정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이 정원은 1450년대 만들어졌고 1650년대 개수공사를 거쳐 완성된 정원이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전해진다고 했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폭포와 커다란 연못을 중심으로 정원석도 뛰어나고 특색 있어 1987년 명승문화재로 지정됐다는 것이다. 고요한 산사에 말차 한 잔 마주하고 앉아 바라보는 정원의 풍경은 세간에 물들지 않은 정토를 연상케 했다. 한없는 평화로움과 적막감. 옛 사람들이 정원에다 불교의 이상세계를 담아내려했음이 자연스레 읽혀진다.

다음날 일행은 데와삼산 중 하나인 유도노산을 찾았다. 데와삼산은 불교와 민간신앙의 중심지였다. 특히 하구로산은 관세음보살을, 갓산은 아미타여래를, 유도노산은 대일여래를 본존으로 모시고 스님과 불자들이 수행하는 전통이 깊었다. 또한 하구로산은 현세, 갓산은 과거, 유도노산은 미래를 상징하는 대단히 성스러운 산이기도 하다. 그러나 메이지유신과 함께 등장한 신정부가 신불(神佛) 분리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많은 사찰들이 신사로 바뀌었다. 유도노산 신사에는 이러한 불교의 아픈 역사가 잘 드러난다. 사찰이 신사로 바뀌고 에도시대에 조성된 목조대일여래좌상은 신사 내부의 오른편에 초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커튼을 치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젊은 두 신도 성직자들에 의해 진행되는 호마의식은 이방인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메이지유신 때 흩어졌던 작코지 내의 불상과 불구들.

일본 전통음식점에서 소바와 산채 요리로 점심식사를 마친 일행은 유도노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로 꼽히는 츄렌지(注連寺)로 향했다. 이 절은 835년 개창한 진언종 사찰로 즉신성불했다는 데츠몬카이(鐵門海, 1759~1829) 스님과 천장의 그림들로 유명하다. 데츠몬카이 스님은 에도시대 후기 인물로 25살에 출가해 부지런히 정진해 신령한 능력을 얻었다. 이후 스님은 세간을 돌아다니며 굶주린 이를 돕고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등 평생 백성을 위해 헌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보살의 화신이라 여기며 존경하고 따랐다. 스님이 71세가 되던 1829년 12월8일 스님은 중생구제를 발원하며 앉은 채 입적했고,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 대중들은 스님의 등신불을 법당에 모셨고 1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생들의 의지처가 돼주고 있다.

저명한 작가들이 참여해 완성한 츄렌지의 천장화도 미슐랭가이드 그린에 소개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본당의 천장에는 악기를 연주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녀들이 있는가 하면 성스러움과 속됨이 교차되는 100명의 얼굴이 천장 한 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마치 당장이라도 천장에서 내려올 듯 꿈틀대는 용들과 백마의 역동적인 모습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가운데 단연 최고는 키노시타라는 작가가 그린 ‘하늘의 문’이다. 합장한 두 손만 그린 이 그림은 닳고 주름진 손을 통해 세상 무엇보다 성스러운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구로산은 츄렌지에서 차량으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하구로산은 414m의 작은 산이지만 1400년 전부터 수행과 신앙의 성지로 각광받았으며, 오랜 세월 순례자의 발길이 이어진 영산이다. 참배길 시작 지점부터 산 정상의 삼신합제전(三神合祭殿)까지 에도시대 초기 조성된 2446개의 돌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참배길 양쪽에 쭉쭉 뻗은 수령 300~600년의 삼나무 숲도 일품이다. 일본의 특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나무 숲은 ‘일본의 삼림욕의 숲 100선’에 선정됐으며, 2009년 미슐랭가이드 그린에서 최고등급인 별 세 개를 받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못 하나 사용 않고 만든 하구로산의 오중탑.

삼나무 숲 사이의 돌층계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왼쪽으로 하구로산의 상징인 오중탑(고주노토)이 나타난다. 일본 3대 오중탑 중 하나라는 이 탑은 10세기 말 처음 세워졌고, 14세기 말에 재건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삼나무 숲 한 가운데 못 하나 사용하지 않고 쌓아올린 30m 높이의 오중탑이 선사하는 장엄함은 잊지 못할 감동으로 와 닿는다.

대자연의 숲이 주는 청량함을 한껏 들이키며 2km에 이르는 돌계단을 느긋이 걷다보면 산 정상에 삼신합제전(三神合祭殿)이라는 거대한 신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데와삼산 중 갓산(1984m)과 유도노산(1500m)에 겨울철 폭설이 쏟아지면 진입이 불가능하기에 이곳 하구로산에 삼신을 함께 모셔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온갖 신들을 위한 신사지만 이곳도 메이지유신까지는 작코지(寂光寺)라는 큰 사찰이 있었다.

그러나 작코지도 메이지정부의 불교탄압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절에 모셔졌던 불상과 수많은 불구(佛具)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때 사토 야스다로라는 거사가 사재를 털어 수백 점이 넘는 불상과 불구들을 한 곳에 모아 봉안했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모아 후세에 전했던 간송 전형필 선생과 비슷한 인물일 수 있겠다. 지난해 7월 사토 야스다로의 자손들이 불상을 모실 천불당에 모든 불상과 불구들을 이곳에 기증했다. 그러나 천불전이라지만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 보관과 전시 공간의 성격이 강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야마가타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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