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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사마와티 ①

기자명 김규보

역병으로 부모님 잃고 홀로 남다

16세에 불과했던 그녀 앞에서
전염병으로 끊임없이 죽어가
식량 부족에 급식소는 싸움만

마을에 역병이 돌았다. 피부에 반점이 올라오는 것을 시작으로 호흡이 점점 거칠어져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면, 이내 피를 토하며 목숨을 잃는 무서운 병이었다. 수십 구의 시신이 매일같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옥처럼 변한 마을에 남게 될 경우 결과는 뻔했다. 수많은 사람이 병을 피해 이웃 마을로 도망쳤고, 사마와티의 가족 역시 집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16세에 불과하던 사마와티는 시체들이 널브러진 섬뜩한 거리 풍경이 무서워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마을을 빠져나와야 했다.

이웃 마을엔 재상 고사카가 왕의 명령을 받아 만든 격리소가 있었다. 사마와티의 가족은 그곳에 기거하며 나라에서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근근이 살았다. 잠자리는 비좁고 먹을 것은 부실했지만 소중한 가족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사마와티는 어려서부터 생각이 깊고 품성이 고와 마을 사람들이 자기 딸처럼 생각하며 예뻐했다. 특히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했는데, 부모 또한 그런 딸을 더없이 사랑스럽게 대했다. 세간 대부분을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처량한 신세도 사마와티 가족의 행복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의 피부에 시커먼 반점이 피어올랐다. 병의 징후였다. 비극을 예감한 부모는 사마와티를 불러 앉히고 차분하게 말을 했다. “우리는 곧 죽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 이후에 너는 너무 상심하지 말고 삶을 이어가라. 항상 선한 마음을 내어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공덕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것이야.” 마지막 말을 남긴 부모는 바로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며칠만 살아계시라고 기도했으나 한나절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된 부모 앞에서 사마와티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밤새 울다가 유언이 된 부모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상심하여 이대로 울기만 한다면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는 것이 된다는 생각에 모질게 입술을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사마와티는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 아침, 급식소에서 큰 소란이 벌어졌다. 음식은 늘 부족해서 줄을 잘못 서면 하루를 꼬박 굶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날은 마침 배분량을 줄이겠다는 공지가 나간 후여서 사람들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서로 먼저 음식을 받겠다며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뒤엉킨 사람들에게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사마와티는, 피가 엉겨 붙은 시신이 굴러다녔던 고향 마을의 풍경이 떠올라 고개를 돌렸다. ‘살고 싶은 마음이야 매한가지인 것을, 자기가 살겠다고 남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잘 생각해 보면 해결될 문제인데….’

사마와티는 곰곰이 생각하다 한 가지 묘안을 떠올리고는 급식소 담당자에게 가서 말했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옳다고 판단하시면 시행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진 사마와티의 말을 끝까지 들은 담당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일꾼들을 불러 모아 명령을 내렸다. “오늘 배분할 음식의 양과 사람 수를 파악하여 한 사람에게 얼마나 배분해야 할지 계산하라. 그런 뒤 급식대 앞에 울타리를 치고, 사람이 들어가고 나오는 문을 세우도록 하라.”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자 어수선한 분위기는 진정됐다.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일꾼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울타리와 출입구가 설치되자 급식소 담당자가 말했다. “오늘 배분할 음식은 어제보다 적어졌으나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공평하게 돌아갈 것이다. 울타리 밖으로 줄을 선 뒤 차례가 돌아오면 문으로 들어와 음식을 받고 반대편 출구로 나가면 된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잦아지고 울타리 밖으로 긴 줄이 만들어졌다. 담당자의 말대로 어떠한 사고도 없이 격리소의 모든 이가 똑같은 음식을 나누어 받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재상 고사카가 사마와티에게 다가갔다.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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