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교수의 ‘석보상절 주해본 간행의 성격과 가치’
정우영 교수의 ‘석보상절 주해본 간행의 성격과 가치’
  • 정우영 교수
  • 승인 2018.10.15 17:51
  • 호수 14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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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보상절 주해본, 세종시대 기록된 석보상절을 현대어로 풀어낸 역작”

석보상절, 한국 르네상스로 불린
세종시대 대표적 저작으로 평가
여러 경전에서 관련 내용을 뽑아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한글경전

훈민정음 창제 후 한자음 표기
최초로 적용한 어문규범집으로
국어학적 가치 큰 국보문화재

간행 570년만에 국어·불교학자
공동작업으로 완간된 주해본은
종교·문화사적 타임캡술로 평가
세종의 명으로 간행된 한글 불교경전인 석보상절. 출처=국립중앙도서관
세종의 명으로 간행된 한글 불교경전인 석보상절. 출처=국립중앙도서관

정우영 교수의 이 논문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원장 정승석)은 10월5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석보상절 주해본 완간의 의의’를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이다. 편집자

‘석보상절(釋譜詳節)’은 1446년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훙거한 후(1446년 3월24일), 수양대군이 부왕인 세종의 명을 받들어 편찬을 시작, 1446년 9월에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이용하여 그 이듬해인 1447년 7월25일경에 원고를 완성하고, 1448년 연간에는 전체 24권을 모두 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가 24권으로 구성·간행되었으나, 현재는 안타깝게도 10권만이 전해지고 있다.

‘석보상절’은 15세기 한국불교사적 연구의 소산이기도 한, 말하자면 융합학문적 성격을 띤 문헌이다. 따라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 문헌의 본체를 온전히 드러내려면, 불교학과 국어학의 학제 간 협력 작업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차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ABC) 역주사업이 선정되고, 그 가운데 ‘언해본 주해’의 대상으로 이 문헌이 채택됨으로써 오늘과 같은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석보상절’은 문화의 르네상스라 할 만한 세종시대의 대표적 저작 중 하나다. 이 문헌을 기반으로 하여 운문불경집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제작되었으며, 이 두 문헌을 토대로 15세기 ‘한글대장경’이라고 평가받는 ‘월인석보(月印釋譜)’(전 25권)가 완성될 수 있었다. ‘훈민정음’ 창제·반포 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훈민정음(한글)’으로 번역·조성된 불교경전 ‘석보상절’, 그것의 주해본은 종래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불교학과 국어학 전문가가 협력적 주해작업을 벌여 이번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주지하듯이, ‘주해본(注解本/註解本)’이란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라는 뜻이다. “석보상절 주해본”이란 세종시대의 언어로 된 ‘석보상절’을 대상으로 본문의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현대국어로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을 말한다. 그동안 석보상절은 주로 국어 주해가 중심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번 사1업의 성과인 ‘석보상절 주해본’은 전문 불교학자와 국어학자의 협력적 주해 작업을 통해 불교주해가 한층 강화됨으로써 질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이 사업으로 ‘석보상절’이라는 문헌의 본체를 이해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되며, 국어사와 한국불교사적 지식 기반을 동원해 이 문헌을 깊이 있고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석보상절’은 석가의 일대기로, 왕후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숭유억불을 국시로 하던 조선사회의 관점으로는 반국시적인 사업이며, 그럼에도 이것이 군왕과 왕실의 권면·후원으로 경전 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와 같은 배경 속에서, 고유어와 외래적인 요소의 동국정운 한자음과 외국어까지 모두 적을 수 있는 ‘훈민정음’ 문자체계로써 우리나라의 언어문화적, 불교문화적 역량을 결집해 국보급 문화재를 제작해낸 것이다. 이러한 국보급 문화재 석보상절이, 간행 570년 만에 동국대 불교학술원 ABC사업단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석보상절 주해본”을 완간하게 된 것은 그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다하겠다. 참으로 오랜 인연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석보상절서’와 ‘어제월인석보서’를 기초로 하여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제작 경위를 간략히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1448년(세종 28년) 3월에 소헌왕후 심씨가 승하한다. ② 세종이 수양대군에게 고인[소헌왕후]의 추천(追薦)을 위해서는 전경(轉經)만한 것이 없으니 (그것을 위해) 석보(釋譜)를 찬역(撰譯)하라고 명한다. ③ 승우(僧祐)·도선(道宣) 두 율사가 펴낸 두 편의 보(譜=釋迦譜)를 합치되 중요한 내용은 자세히[詳] 쓰고 그렇지 않은 것은 줄이기도 하여[節] 석보상절(釋譜詳節)을 만들고, 이를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정음(正音)으로 번역한다. ④ 우리말로 번역한 석보상절을 진상하니 세종께서 보시고 곧 찬송을 짓고 ‘월인천강’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셨다.

이상과 같은 제작 경위를 바탕으로 ‘석보상절’은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 첫째, 이 책은 왕자(수양대군)가 부왕(세종)의 명으로 당시 고승대덕의 자문을 받고 여러 불경에서 관련 내용을 뽑아 조성한 ‘석보상절’을, 다시 ‘훈민정음’으로 번역해 만든 한글불교경전이다. 미문이지만, 한 나라의 왕과 왕자가 자국의 언어(문자)로 불교경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필자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전거가 분명한 여러 불전들을 모아 기획 의도에 맞추어 한문 불전인 ‘석보상절’을 만들고, 이를 다시 표준화된 훈민정음 표기법에 따라 ‘正音’으로 번역하였던 것이다. ‘

석보상절서’와 ‘어제월인석보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연과(因緣果)의 원리에서 왕(세종)과 왕자(수양대군)가 이 문헌 조성의 주체가 되어 있다. 이것이 완성되자, 세종은 이를 열람하고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라는 한국적 운문불경을 제작한다. 그리고 그 10여년 후에 이 두 문헌을 합편해 한글대장경이라 일컬을 만한 ‘月印釋譜’를 편찬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전 불사의 핵심적 기반은 바로 이 ‘釋譜詳節’이었던 것이다.

둘째,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반포 후 한국 고유어, 개신 한자음(동국정운 한자음), 외국어(중국어)의 훈민정음 표기법을 만들어 적용한 최초의 어문규범집이자 용례집이다. 이 석보상절 제작이 외국어의 한글 표기법을 추가 제정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 세종은 1443년 12월에 우리 문자인 ‘언문(諺文)’(후에 ‘訓民正音’)을 창제하고 나자, 이제는 운서(韻書)의 체계에 맞는 이상적인 새로운 한자음(후에 ‘東國正韻’)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외국어 음(후에 ‘洪武正韻譯訓’)까지 적을 수 있도록 집현전의 유능한 학자들을 발굴해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그 중간 결과가 바로 1446년 9월 상한에 완성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 UNESCO세계기록유산)이다. 이 해례본에는 훈민정음 초·중·종성의 자모(字母)의 자형과 음가가 공식적으로 부여되었으며, 고유어를 비롯하여 새로운 한자음을 적을 수 있는 운용 규정까지 갖추어 공포된다. 그와 함께 훈민정음 자모에 대응되는 고유어 단어 123개를 제시하여 백성들의 새 문자 학습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 백성들이 쓰던 자국어를 이두·구결 등 한자를 빌려 불완전하게 적어내던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이 책의 간행이야말로 언어문화의 혁명적 업적을 완벽하게 반영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 문헌이 간행됨으로써 우리말·우리글(훈민정음/한글)로도 무한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민족적 자부심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 언어문화의 새로운 희망적 지평을 열어준 문헌이라 평가할 수 있다.

국어학적 또는 국어학사적 가치로 볼 때 석보상절은 ‘훈민정음(訓民正音)’ 문자체계의 핵심 용어인 ‘정음(正音)’의 개념을 가장 명확하게 정의한 문헌이다. 또한 석보상절에는 위와 같은 ‘正音’의 개념이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원칙을 문헌 안에 그대로 구현하고 있다.

석보상절은 ‘훈민정음’ 문자문화의 교육자료로서, 국어교육적인 활용 가치도 대단히 많은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전체에 훈민정음 언해본에 실린 훈민정음 규정이 반영되어 있고, 특히 외국어(중국어) 표기에는 언해본의 ‘한음치성(漢音齒聲)’(중국어 치음)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의 협주에 나타나는 한자어의 주석을 조사·분석하면 15세기 당시 국어의 문법범주에 대한 국어교육이나, 15세기 당시의 국어사전 또는 불교용어사전 대용으로서 활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와 함께 석보상절의 국문학사적 가치는 각 분야마다 여러 가지 가치를 논할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석보상절은 스토리텔링에 기여할 만한 풍부한 불교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책이라는 것이다. 석보상절은, 1447년 ‘석보상절서’(수양대군)와 1459년 ‘어제월인석보서’에서 밝힌 조성 경위처럼, 여러 불교경전을 저경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그에 따라 그 안에 여러 가지 불교설화가 들어가게 되었는데, 자유로운 번역 원칙에 따른 결과 우리말 구조에 적합한 자연스러운 국어로 번역되었다. 고전문학 연구자들 가운데는, 석보상절에 실린 불교설화를 한글 고대소설의 원류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석보상절의 불교문화사적 가치도 크다. ‘석보상절’은 우리나라에서 조성한 전혀 새로운 버전의 석가의 일대기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자유로운 번역, 풍부한 협주, 그리고 우리나라 문자인 ‘훈민정음’을 이용한 한국적 불교경전의 조성 등 실로 다양한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고려시대로부터 전승되어온 불교문화사적 전통을 계승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히 석보상절에 들어 있는 불교용어의 주석(협주)은 오늘날의 불교용어사전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불교용어를 일관성 있게 주석할 수 있었던 것은, 15세기 조선의 불교학사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 아닌가 한다. 이는 1459년 월인석보에 가면 그 분량이 대폭적으로 증가하며, 이것만 모아놓아도 수준 높은 불교용어사전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분량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석보상절은 금속활자를 제작해 간행된 책으로서, 월인천강지곡과 함께 한국 출판문화사적 가치를 한껏 드높인 책이다. 거기에 숭고미·엄숙미의 서체미를 보여주는 전서체의 훈민정음 동활자 제작은 문자발달사적 도약을 가져오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정우영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정우영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

‘석보상절’은 세종 당시 조선 왕실의 후원과 고려시대 불교적 전통을 계승한 불교학사적 지식의 온축이 있었기에 찬술이 가능했던 한글 불교경전이다. 박물관에 가서나 열람할 수 있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이를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주해·간행한 것은, 대한민국의 학문적, 종교적, 문화사적 업적의 타임캡슐로서, 미래에 새로운 문화창조의 반석이 될 21세기 문화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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