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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이병승의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기자명 김형중

인생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도 살고
특별한 이유 없이도 산다는 깨침 줘

자연히 비가 오고 해가 나듯이
인생도 희비 갈리고 생사 다퉈
욕망 내면 마음은 고통 불바다
욕심 내지 않으면 모두 잘 살아

어제는 하루 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은/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 살겠다던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자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인생은 오묘하고 불가사의하고 논리적으로 설명 안 되는 일이 많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렇고 그런 것이 인생이요, 그냥 사는 것이 인생이다. 매일 진한 깻 맛만 느끼면서 살 수는 없다.

우리 인간은 누구를 위해서 그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생존하기 위해서도 살고, 그때그때 삶의 의미를 느끼고 만들면서 자기 인생을 산다.

개에게 물어보라 ‘왜 사느냐고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고…’ 인간이 사는 집을 지켜주고 심심해서 죽고 못 사는 사람들의 애완견이 되기 위해서 사느냐고 물어 보라.

이 시를 읽으며 우리의 인생이 나의 삶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도 살고 특별한 이유나 까닭이 없이도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시는 그런 깨우침을 주는 좋은 시이다.

인생이 지겹고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야 한다. 어떤 인생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애달파 하는 사람도 있다. 살고 싶다고 마음대로 살 수 없는 인생도 있다.

시인은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고 노래했다. 삶의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양면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표현대로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이다.

인생은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는다”고 한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희비와 고락이 조석지변이다. 시인은 말 후구에서 “살자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고 갈무리하였다.

인생은 때로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다. 인생은 때로는 죽고 싶도록 지겹고 오그라들기도 하고, 까닭 없이 아무라도 안아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자연이 밤낮이 있고 비가 오기도 하고, 해가 나기도 하듯이 인생도 조석으로 희비가 엇갈리고, 생사가 기로에서 다툴 때가 있다.

그냥 사는 것이지 인간이 무엇을 해보겠다고 욕망을 부리면 내 마음은 고통의 불바다가 된다. 그냥 욕심내지 않고 살면 모두가 잘 살 수가 있다. 엄청난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성취해 보겠다고 곁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결국은 자신도 지처서 무너지고 만다. 그냥 힘든 일이 있으면 극복하려고 용쓰지 말고, 견디면서 버티면서 살면 그런대로 살아지는 것이 인생이다. 욕망이 많은 삶은 실망도 크고 상처도 크다. 능력이 모자란 사람은 욕심이 작다. 그래서 상처도 작다. 그래서 인생은 공평한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그 동안 힘들었나 보다. 이병승(1966~현재) 시인의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는 시를 읽으며,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교정을 거닐며 지난 삶을 반추해 본다.

김형중 동대부여고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60호 / 2018년 10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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