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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전통문화 보고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전통문화유산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건물을 포함하는 특정 공간이 통째로 전통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 적지 않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같은 조선왕조의 궁궐이나 성곽, 혹은 조선의 선비들이 공부했던 서원 혹은 양반가의 종택 같은 곳들을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처럼 건물을 포함하는 특정된 공간이 전통문화유산으로 보전된 곳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헤아리는 것이 바로 전통사찰이다.

‘전통사찰’은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지정된 사찰을 의미한다. 2012년에 개정된 이 법률에 의하면, ‘불교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형상을 봉안하고 승려가 수행하며 신도를 교화하기 위한 시설 및 공간’을 전통사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률에 의해 지정되어 있는 전통사찰과 전통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공간들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뚜렷하다.

여타의 다른 공간들은 더 이상 사용되고 있지도 않고, 그저 건물과 그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만이 남아있는 곳으로, 말 그대로 유산(遺産)일 뿐인 공간이다. 전통사찰 역시 그런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흔적[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다. 다만 전통사찰들이 간직하고 있는 그 흔적들에게 있어서, 관람의 대상 혹은 옛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것과 같은 기능은 부수적인 역할일 뿐이다. 그 부수적인 기능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공능을 여전히 지금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수행, 스님들의 일상사, 불교도들의 신행 대상이자 다양한 의례 등에서 그 흔적(?)들에게 주어진 본연의 공능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본연의 공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전통사찰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스님들의 수행과 불교도들의 신행이라는 살아있는 삶의 양식들 덕분이다.

그 오래된 삶의 양식과 그 삶의 양식을 지속하게 하는 공간을 보존하고 또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법률이 바로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일 것이다. 그 의도 자체만 보면 대단히 훌륭한 법률인 것처럼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순기능 역시 적지 않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전통사찰’이라는 것은 이 땅의 불교도들이 겪었던 지난 역사의 삶의 양식과 공간을 보존하는 그런 곳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의 삶의 양식보다도 오히려 그것에서 비롯되어 지금의 삶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살아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가, 현재의 삶의 양식이 더 충실하게 반영되는 공간이라는 것이, 여타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간과는 다른 전통사찰이라는 공간의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화가 온전히 보존되고 또 지속되고 있다고 해서, 현재의 삶 현재의 문화가 반영될 수 없게 제한되는 공간이라면, 과연 그것이 내일에도 온전히 그 가치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현재의 삶을 반영해야만, 그래야만 과거의 문화가 보존되고, 새롭게 재해석되고, 훌륭하게 계승될 수 있는 ‘전통’의 어떤 것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이 아니라 ‘계승 및 발전’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이 법률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불교의 유산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온전히 그리고 새롭게 계승 발전되어 내일도 살아있어야 하는, 그래서 내일에도 여전히 기능하는 살아있는 문화의 보고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석길암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huayen@naver.com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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