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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정권의 압박을 무릅쓰고 치른 박종철 49재

기자명 이병두

사부대중 결집해 열사의 극락왕생 기원

정보기관 초재만 허용했지만
사리암 도승 스님 49재 봉행
조계사, 20년 뒤 추모문화제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봉행된 박종철 49재.
1987년 3월3일 부산 사리암에서 봉행된 박종철 49재.

1987년 1월14일, 서울대 2학년 재학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센터)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경찰과 정부는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으로 둘러대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다행히 이를 알아챈 검사(최환)와 사건의 단서를 접하게 된 기자의 용기로 이 비극은 세상에 알려졌다. 화장을 한 아들의 유해를 임진강에 뿌리던 아버지 박정기씨는 눈물을 쏟으며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했던 짧은 한 마디가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절이게 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뒤 많은 국민들이 그를 친자식이나 형제로 여기게 되었고, 당연히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가 크게 번져갔다. 한 날 한 시에 전국의 모든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그를 추모하기도 했고, 이렇게 시작된 정의의 물길이 역사적인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두환 정권을 굴복시키게 되었으니, 박종철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를 완전히 바꾸어놓는 혁명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온 가족이 부산의 사리암에 다니는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철도 신심 깊은 불자였 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 직후부터, 사리암은 자연스럽게 정보기관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처음 정보기관에서는 “초재만 허용하겠다” 했지만, 주지 도승 스님은 이들의 협박에 굽히지 않고 영가를 위한 재를 지냈다.

이 사진은 1987년 3월3일, 사리암 대웅전 정면에 ‘고 박종철군 49재’라고 쓴 현수막 아래 불자들이 모여들고 있는 장면이다. 전경이 빼곡히 배치돼 스님들과 신분 확인된 신도들만 출입시켜서 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밖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그의 왕생극락을 기원했다.

본래 조계종 총무원장(의현)이 사건 엿새 뒤인 1월20일에 “박종철군 49재를 조계사에서 치르겠다”고 발표했고, 그에 따라 조계사에서 재를 준비하다가 2월23일 갑자기 사리암으로 변경됐다. 이와 관계없이 3월3일 조계사에서 49재를 치르기로 하고 들어가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강제로 막았다.

이런 원천 봉쇄에도 불구하고 지선 스님을 필두로 불자 대중들은 조계사 진입을 시도했고, 결국 49재를 짧게 치렀다. 세월이 흐른 뒤 지선 스님은 “수많은 49재를 지내봤지만 그렇게 짧은 49재는 처음이었다. 요령 몇 번 흔들고, 열사 이름 몇 차례 부르는 것으로 끝내고야 말았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2007년 3월3일 조계사에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풍물패 길놀이를 시작으로 박종철 열사 49재 20년 천도재 및 추모제, 추모문화제 순으로 열사를 기리는 법석이 열렸다. 그리고 1987년 3월에 사리암에서 박 열사 49재를 지냈던 도승 스님은 31년 반이 흐른 지난 9월16일, 양산 성전암에서 아버지 박정기씨의 49재를 지내며 열사의 가족을 각별히 챙겼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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