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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공 스님 법제자 ‘비구니 선객 선복 스님’ 행장 재조명 되나

  • 교계
  • 입력 2018.10.22 19:19
  • 수정 2018.10.24 17:36
  • 호수 1462
  • 댓글 2

청운당 선복 스님 사리탑
10월21일 안성 법계사 조성
1982년 간행된 ‘만공법어’에
법희 스님 이어 수법제자 명시
“근대 비구니선승으로 꼽혀”

안성 법계사는 10월21일 ‘청운당 선복 스님 사리탑 제막식’을 봉행했다.
안성 법계사는 10월21일 ‘청운당 선복 스님 사리탑 제막식’을 봉행했다.

비구니 법희·일엽·만성 스님 등과 함께 만공 스님의 수법제자로 손꼽히는 선복 스님의 사리탑이 세워졌다. 이를 계기로 근현대 비구니 선객이었던 선복 스님의 알려지지 않은 행장을 재조명하는 노력이 후학들에 의해 전개될 전망이다.

안성 법계사(주지 도윤 스님)는 10월 21일 법계사 경내에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 점안법회’와 함께 ‘청운당 선복 스님 사리탑 제막식’을 봉행했다. 법계사 주지 도윤 스님은 선복 스님으로부터 성오, 수정 스님에게 이어진 법맥을 이어받은 증손상좌다.

선복 스님의 사리탑을 조성한 도윤 스님은 선복 스님의 승손상좌다.
선복 스님의 사리탑을 조성한 도윤 스님은 선복 스님의 증손상좌다.

이날 점안법회 및 제막식에는 수덕사 전 주지 옹산, 파주 천불사 주지 일문, 안성불교사암연합회장 혜담(안성 대흥사 주지) 스님을 비롯해 선복 스님의 법맥을 이은 문중스님들과 김학용 국회의원 등 사부대중 300여명이 참석했다. 

청운당 선복 스님은 1886년 11월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입궁해 궁인이 되었지만 경복궁에서 열린 비구니 원만 스님의 ‘법화경’ 강의를 듣고 20세에 발심출가했다. 원만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선복 스님은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었던 만공 스님으로부터 ‘청운당’이라를 당호를 받고 참선 정진해 법상좌로 인가 받았다. 선복 스님은 상좌 성오, 손상좌 수업·수연 스님 등과 함께 1946년 만공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시봉하기도 했다. 선복 스님은 1970년 음력 2월15일 입적해 다비 후 사리 1과가 수습됐다.

도윤 스님은 사형인 현성 스님을 비롯에 사리탑 조성에 도움을 준 스님과 신도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도윤 스님은 사형인 현성 스님을 비롯해 사리탑 조성과 관세음보살상 불사에 도움을 준 스님과 신도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도윤 스님은 이날 사리탑 제막식에 앞서 선복 스님의 행장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공개하기도 했다. 자료를 살펴보면 출가 후 수덕사와 견성암 등에서 수행정진 한 선복 스님에게 만공 스님은 ‘참선 배워 정진하는 법’ ‘무자화두 드는 법’을 친필로 적어 전하며 수행을 독려했다. 만공 스님은 이 글 말미에 ‘세존응화 이천구백오십일년…수덕사 금선방장 만공월면’이라고 적고 있다. 이 글은 ‘만공법어’ ‘만공어록’ 등에도 수록돼 있다. 선복 스님은 또 만공 스님의 정혜사와 간월암 불사도 적극 도왔다. 출가 전 상궁이었던 스님은 인연이 닿았던 왕실인사와 상궁 등이 화주로 동참하도록 주선했던 것. 이 같은 내용은 최근 ‘경허·만공 선양사업회(회장 옹산 스님)’가 발간한 ‘소설 만공’에도 수록됐다. 솜씨가 좋았던 선복 스님은 만공 스님의 의대를 직접 지어 드리기도 했는데 특히 1946년 만공 스님이 전월사에서 입적하실 때까지 시봉했다. 도윤 스님은 “당시 세납이 60에 가까웠던 선복 스님을 도와 상좌 성오 스님과 손상좌 수연·수업 스님 등이 시자로 함께하셨다”고 기억했다. 1982년 간행된 ‘만공법어’집에 수록돼 있는 만공 스님의 생전 마지막 사진에도 이들 스님이 ‘시자’로 소개돼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인연으로 선복 스님은 만공 스님의 가사에 쓰였던 백동 가사고리 등의 유품을 간직해 후학에 전하기도 했다.

1910년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오른에서부터 두번째 스님이 선복, 세번째 스님이 만공 스님이다.
1910년대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오른에서부터 두번째 스님이 선복, 세번째 스님이 만공 스님이다.

하지만 선복 스님의 자세한 행장은 알려진 바가 극히 드물어 제대로 조명 되지 못하고 있다. ‘만공법어’에는 수법제자들의 법명이 수록돼 있는데 비구니로서는 법희 스님에 이어 선복 스님의 법명이 등장해 만공 스님의 법제자임을 증명하고 있다. 이 책에는 법희, 선복 스님에 이어 일엽, 만성 스님을 비구니 법제자로 밝히고 있다.

도윤 스님은 “선복 스님은 출가 후 수덕사 만공 스님의 회상에서 정진했으며 청운당이라는 당호도 만공 스님에게 받았다”며 “1916년 견성암이 창건된 후에는 법희 스님과 함께 견성암에서 정진했지만 당시의 자세한 행적에 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고 알려진 바도 드물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선원총람'에 수록돼 있는 견성암 사진. 1943년 촬영된 사진으로 가운데 앉아있는 만공 스님을 중심을 사진 오른쪽이 선복, 왼쪽 안경 쓴 스님이 법희 스님이다.
'선원총람'에 수록돼 있는 견성암 사진. 1943년 촬영된 사진으로 가운데 앉아있는 만공 스님을 중심으로 사진 오른쪽이 선복, 왼쪽 안경 쓴 스님이 법희 스님이다.

조계종교육원 간행 ‘선원총람’을 살펴보면 1943년 견성암에서 촬영된 사진에서 만공 스님을 가운데 모시고 좌우로 선복 스님과 법희 스님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견성암 선원 방함록에 따르면 법희 스님에 이어 1976년부터는 선복 스님의 상좌인 성오 스님이 선원장 소임을 맡기도 했다. 성오 스님은 1926년 만공 스님으로부터 게송을 받았는데 만공 스님은 첫 머리에 ‘시성오선니(示性晤禪尼. 비구니선사 성오 보아라)’라고 적고 있어 눈길을 끈다.

도윤 스님은 “선복 스님뿐 아니라 그 상좌인 성오 스님에게도 ‘선니’라는 존칭을 쓰는 등 출가수행자로서 비구니스님들을 차별없이 대하셨던 만공 스님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며 “그간 사리조차 봉안하지 못해 후학으로서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근대 비구니선객이셨던 선복 스님에 대한 조명을 통해 근현대 비구니선맥 연구에 전기가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윤 스님은 사리탑 조성을 계기로 선복 스님에 대한 자료 수집과 함께 연구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안성=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462호 / 2018년 10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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