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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끊고 선을 닦으면 정해진 운명도 바뀐다

중국 정공 스님의 '무령수경청화' 법문 ㉑

아무리 많은 공덕을 닦아도
한번 화내면 숲을 태워버려
인욕하면 이후 안정이 되고
안정이 되면 지혜가 생겨나

정공 스님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이 일체선법의 뿌리라고 강조한다.
정공 스님은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이 일체선법의 뿌리라고 강조한다.

뜻으로 짓는 업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즉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으면 삼선근으로 세간의 모든 일체 선법은 모두 이로부터 나옵니다. 만약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면 탐진치에 떨어지니 바로 삼독번뇌입니다. 세간의 모든 일체 악업이 이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뜻으로 짓는 삼업은 진정으로 고락의 주재자이자 근원으로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상 사람은 명성과 이욕, 오욕육진을 구하지만, 실제로는 탐심을 일으켜서 얻는 것이고, 자신의 운명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운명에 없으면 아무리 탐하여도 구할 수 없습니다. ‘요범사훈(了凡四訓)’을 읽으시면 진정으로 이러한 도리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운명에 있는 것은 던져버려도 잃지 않고, 운명에 없는 것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요범 거사는 좋은 모범사례입니다. 그의 장점은 명운을 알았습니다. 명운을 알면 천명을 즐깁니다. 이로써 자연의 과보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는 망상이 없고 심지가 청정하였습니다.

자신의 현재 상황이 편안하고 사람마다 모두 인과를 분명히 이해하면 천하가 태평하고 자기를 고집하여 싸우는 일이 없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면 일평생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부귀하여도 복이 있고, 빈천하여도 복이 있어 매우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의 명운을 모르고, 인과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과를 믿지 않으면 멋대로 망녕되이 행하고 날마다 죄업을 짓습니다.

비록 명운이 정해진 것일지라도 일평생의 행위 조작이 날마다 모두 가감승제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명운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매일 짓는 행업이 가감승제의 빈도가 높지 않아 작은 선을 짓고 작은 악을 지으면 일평생 명운대로 지내고 변화가 없습니다. 만약 큰 악을 짓고 큰 선을 지으면 명운이 바뀝니다. 그래서 사람은 40세 이후 명운은 후천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40세 이전은 선천으로 바로 숙세에 지은 선악의 영향이 큽니다. 진정으로 깨달아서 착실히 악을 끊고 선을 닦으면 40세 이후 반드시 좋게 바뀝니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불법에서는 우리들이 한 평생 복을 누릴 수 있게 합니다. 이를 진실로 믿고 진실로 잘 살면, 만년이 될수록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의지해 닦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십선업을 닦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첫째 탐내지 않음은 세간법을 탐내지 않고, 출세간법을 탐내지 않음을 가리킵니다. 이들을 철저하게 내려놓아야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있어도 탐내지 않고, 없어도 탐내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청정심입니다. 재산이 있거나 없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은 모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죽음에 임해서 한평생 소유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반드시 사살진상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눈앞에 우리들이 소유한 일체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잠시 누리다가 가는 여인숙으로 절대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간파할 수 있으면 탐심은 사라지고, 생활에서 일체 누리는 것에 대해 헤아리지도 정색하지도 않고 자재합니다. 이치에 명료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마음이 편안하여 사실진상을 봅니다. 이른바 “세상을 살면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일체와 자신을 모두 상관하지 말고, 내려놓고 탐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응당 중생을 위해, 사회를 위해 적극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둘째는 성내지 않음으로 무릇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을 만나면 사람들은 모두 화를 내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는 나와 남을 매우 크게 해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공덕을 닦아도 한번 화를 내면 이른바 공덕의 숲을 태워버립니다.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쌓은 공덕이 도대체 얼마나 되나?” 만약 아침에 화를 내면 공덕은 단지 몇 시간 있을 뿐입니다. 임종 시 화를 내면 한평생 공덕이 남김없이 다 타버립니다. 그래서 무릇 당신을 화내게 하는 것은 모두 마구니가 현전한 것입니다. 마구니가 공덕을 이렇게 많이 닦았음을 보면 파괴할 방법이 없어 당신에게 공덕의 숲을 태우라고 권합니다.

진정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역경이 현전하면 쉽게 자신의 공덕을 태우지 않아, 화를 내지 않고 인욕을 닦습니다. 참을 수 있으면 나중에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되면 지혜가 생깁니다. 그래서 육바라밀의 보시 지계는 공덕을 닦는 것이고, 인욕은 공덕을 지키는 것으로 인욕할 수 없으면 공덕은 저절로 사라져버립니다.

공덕은 계정혜로 한번 화를 내면 계정혜는 모두 사라집니다. 복을 닦는 사람은 언제나 화를 내고 성내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 자신이 잘났다고 하는 마음이 있어도 비록 공덕이 없을지라도 복보는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복보는 태워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장래 어느 세상에 환생할까요? 부처님께서는 아수라도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아수라는 복이 있으나, 덕은 없습니다. 성내는 마음이 매우 무거워 쉽게 화를 내고 사람을 해치지만 복보를 다 누리면 삼악도에 떨어집니다. 불법은 삼세의 원한을 말합니다. 첫째 세상에서 복을 닦고, 둘째 세상에서 복을 누리다, 셋째 세상에서 삼악도에 떨어집니다. 성을 내면 다른 사람에 대한 손해는 3할이지만, 자신에 대한 손해는 7할임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셋째 어리석지 않음으로 지혜가 없음입니다.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변재가 있어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지만, 지혜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삿된지 바른지, 옳은지 그른지, 이로운지 해로운지 판별할 수 있음이 지혜입니다. 시골 할머니는 책을 읽은 적도 없고 글자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아미타불 염불을 가르치면 한평생 착실히 염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녀는 염불하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는 선택을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이지 거짓이 아니고, 바르지 삿되지 않으며, 이롭지 해롭지 않고, 선하지 악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전부 옳게 선택하였습니다. 이것이 진실한 지혜입니다.

세상에는 총명하고 재주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염불법문을 의심하고 심지어 비방까지 합니다. 이는 완전히 지혜가 없고 어리석습니다.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불법을 수학하는 것에 장애가 되고 나아가 물러나게 합니다. 그 죄과는 무겁고 그 과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어리석지 않음이 세상 일체선법의 뿌리입니다.

허만항 번역가 mhdv@naver.com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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