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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사마와티 ②

기자명 김규보

“왕비가 돼 은혜 보답하겠습니다”

재상 고사카, 사마와티 지혜에
양녀 삼아 함께 살기로 결심
포악한 후궁에 괴로웠던 왕
사마와티 왕비 삼겠다 명령

“네가 생각해낸 것이냐?”

재상 고사카는 질문을 던지며 사마와티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이제 막 소녀의 티를 벗은 청초한 표정이었지만 눈에는 짙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예 어르신. 사람들이 싸우는 게 안타까워 그랬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급식소의 소란을 정리한 기발한 생각이 이 어린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게 맞다니, 고사카는 돌아서려는 사마와티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혼자 나온 듯한데, 부모는 어디에 있느냐.”
“갑자기 병이 들어 며칠 낮밤을 앓으시다가 어젯밤에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고사카는 사마와티의 지혜에 호기심을, 처량한 처지엔 연민을 느꼈다. 오늘 처음 보았을 뿐이지만 오늘의 인연이 예사롭지 않게 이어질 것임을 직감했다.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직감을 따르기로 했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이 나라의 재상이다. 오늘 급식소에서 네가 행한 일은 많은 이에게 도움이 되었다. 재상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부모가 죽었다니 사정이 딱하구나. 내 너를 양녀로 삼고자 한다. 너는 당장 짐을 챙겨 오거라.”

사마와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재상의 명령대로 집으로 돌아가 얼마 되지 않는 옷가지를 챙겨서 돌아왔다. 사마와티에겐 어디에 사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재상의 명령을 거절할 경우 자칫 격리소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고향을 쫓기듯 빠져온 뒤 궁핍하게 생활하다 부모까지 모두 잃은 사마와티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재상의 딸이 되었다.

재상의 집에서 생활하는 건 단조로웠지만 가끔씩 있는 외출은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 날엔 고사카를 따라 왕궁에 들어갔다. 깊숙이 들어가진 못했어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그런 사마와티를 우연히 우데나 왕이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외모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사마와티가 노니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이기적이고 포악한 후궁 마간디야에 질려 괴로워하던 차였다. 우데나는 사마와티가 재상의 양녀라는 사실을 알고는 고사카를 불러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재상의 딸을 보았소. 참으로 아리땁고, 무엇보다 성품이 고와 보이더군. 그대의 딸을 아내로 삼고자 하니 준비를 해 주시오.”

왕의 말은 명령에 가까웠다. 딸이 왕비가 되는 일인데 마다할 리 없고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그 딸이 사마와티였기에 고사카는 도리어 슬픈 마음이 들었다. 사마와티를 깊이 사랑한 것도 있지만, 포악스러운 후궁 마간디야의 존재가 걱정이었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데 선뜻 승낙할 수 없어 왕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왕은 대뜸 격노하며 고사카를 꾸짖었다.

“마음을 내어 그대의 딸을 왕비로 삼고자 했거늘, 성의를 무시하는 처사가 형편없구려. 계속 거절한다면 재상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물론 나라에서 살지 못하게 조치를 취할 것이오. 이 자리에서 확답을 들어야겠으나 그대가 일해 온 것을 생각해서 하루의 시간을 주겠소. 내일 웃는 얼굴로 보길 바라오.”

왕궁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던 터라 사마와티는 수심이 깃든 얼굴의 고사카 곁에 두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물욕도 명예욕도 없었기에 오히려 자유를 억압당하는 왕비가 되는 일은 썩 내키진 않았다. 하지만 고사카가 그토록 괴로워하고, 어쩌면 나라에서 살지 못하는 고난까지 겪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생각에 여기에 미치자 결심하는 데까지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아버님. 저를 양녀로 삼아 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내일 저를 왕에게 데려가 주세요. 왕의 청을 받아들이는 건 아버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61호 / 2018년 10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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